1년 만에 2배 커진 배달음식시장
배달원은 2년간 21% 늘어나 42만명
부정기 부업자까지 합치면 훨씬 많아
이륜차 등록 229만대… 1년 새 5만여대↑
소음 저감기 뗀 불법개조車 골목 활개
빗발치는 주택가 소음 민원
“층간소음도 묻힐 수준” “창문 못 열어”
신고했다 집주소 노출 보복 피해도
단속 강화해도 처벌 약해 효과 없어
지자체들 “정부, 소음기준 강화” 요청

“배달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박모씨는 지난 9월 국민신문고에 배달 오토바이 소음을 단속해달라고 청원을 올렸다. 박씨는 청원에서 “해운대 좌동 현대아파트는 도로에 둘러싸여 배달오토바이 소음이 스테레오로 들린다”며 “특히 중동 래미안 상가에 있는 배달대행업체 오토바이 소음이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생활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급성장하는 ‘배달문화’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하면서 배달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배달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었고, 그 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늘어난 일자리 이면에는 ‘소음피해’가 있다. 대부분 배달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사용하면서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

◆배달업계 성장에 ‘배달원’ 역대 최대
올해 상반기 ‘배달원’ 취업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은 42만3000명으로 집계돼 1년 새 약 14.2% 증가했다. 배달원에는 우편집배원과 택배원, 음식배달원, 기타 배달원(음료·신문 등)이 포함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배달원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배달원 수는 31만3000∼35만5000명에서 증감을 반복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하반기엔 34만9000명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상반기에는 37만1000명으로 급증했고, 하반기에는 39만명까지 늘었다.

‘배달플랫폼’에서 부정기적으로 배달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부업이나 알바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배달 ‘알바’까지 포함하면 ‘배달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9조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20조원 규모로 2배 넘게 성장했다.
더불어 오토바이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오토바이·스쿠터 등 전국 이륜차 등록 대수는 전년 대비 5만2114대 증가한 228만9009대를 기록했다. 종전까지 이륜차 등록이 연간 1만~2만대씩 늘었던 데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무등록 오토바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이륜차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이륜차 시장 규모는 판매량 기준 395만300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토바이 ‘소음피해’는 골칫거리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토바이 소음 피해가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이모씨는 요즘 잠을 편히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굉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는 불법개조 배달오토바이 때문이다.
이씨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동네가 뒤집어질 듯 ‘부아앙’ 거리는데 마음 같아서는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주택가를 누비는 배달음식 오토바이 때문에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윤모씨는 “아파트가 도로와 맞닿은 데다 코로나19로 수시로 환기를 해야 해 극심한 소음공해에 시달렸다”면서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 때문에 아이 공부에 방해가 되고 집중을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강모씨는 “오토바이 소음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아파트 층간소음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소음문제가 범죄로 이어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달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토바이 소음을 신고했더니 배달기사가 집까지 찾아왔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을 작성한 A씨는 “배달오토바이 소음과 불법 주·정차 문제를 관할 구청에 신고했다가 집 주소가 노출되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며 “집으로 전화하거나 집안을 촬영하고, 야간에는 집 앞에서 일부러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는 등의 보복행위를 한다”고 전했다.
지자체에 접수되는 오토바이 소음 민원은 눈에 띄게 늘었다. 부산 해운대구에는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1200여건이 넘는 오토바이 소음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전북 익산시에서는 2019년 1177건이던 오토바이 소음신고가 지난해 1262건으로 85건 늘었다. 올해는 9월 말까지 이미 1215건이 접수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오토바이 소음을 줄이기 위해 ‘상시 단속’ 현수막까지 내걸고 단속하고 있다.
해운대구와 경찰이 합동단속으로 적발한 오토바이는 지난해 34대에서 올해 125대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제주도는 지난 9월 15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이륜차 무질서 행위를 특별단속해 1812건을 적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42건에 비해 234.3% 증가한 수치다.
이런 단속에도 소음피해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오토바이를 붙잡아도 소음 허용기준치 때문에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승용차의 배기소음규제 상한 기준은 100㏈, 오토바이 등 이륜차는 105㏈이다. 100㏈은 기차가 지나갈 때 나는 소음과 같은 수치로, 주택가 소음 허용기준이 기차가 옆에서 지나가는 수준의 소음까지 허용된다는 얘기다.

◆주거지역 내 소음규제 강화해야
주거지역 소음이 심각해지자 지자체가 직접 ‘오토바이 소음규제 기준을 강화해 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냈다. 부산 해운대구는 지난 9월 홍순헌 구청장 명의로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소음 허용기준치를 건설현장 소음 기준인 80dB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하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다.
해운대구는 오토바이 등 이륜차의 법적 소음허용기준을 낮추기 위한 공동연대를 결성하기 위해 최근 전국 기초단체에 공문을 발송했다. 기초단체 간 연대가 이뤄지면 대정부 공동 요구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국회에서도 오토바이 소음허용기준을 낮추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은 지난 9월 이륜차의 소음허용기준을 낮추고 자동차의 소음기를 제거하는 행위 등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을 담은 ‘소음·진동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안에는 자동차의 소음기(消音器)나 소음 덮개를 떼거나 경음기를 추가로 붙이는 등 배기소음을 크게 유발하는 행위를 더 강력하게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105dB 기차소리보다 커… 80dB 수준 낮춰야”
“현행 소음 허용기준치가 터무니없이 높아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를 단속할 수 없습니다.”
홍순헌(사진) 부산 해운대구청장은 12일 “최근 배달 오토바이 증가로 인한 소음으로 창문 열기가 겁난다”며 “참다 못해 지난 9월 해운대구 주민을 대표해 국민청원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해당 청원에는 청원 마감일인 지난달 15일까지 총 1만257명이 동의했다.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부산 해운대구에 접수된 오토바이 소음 관련 민원은 1200여건이 넘는다. 해운대구는 주민들의 소음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경찰 등과 야간 합동단속을 벌여 소음을 유발하는 오토바이를 적발하고도 단속할 근거가 없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홍 구청장은 “오토바이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소음허용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며 “현행법상 오토바이를 포함한 자동차의 소음허용기준이 너무 높아 단속이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오토바이 소음허용기준은 1990년대 일본의 배기소음 기준을 차용해 105㏈로 설정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2009년 소음 허용기준을 96dB로 낮췄고,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배기소음 규제 상한선을 99dB로 설정하는 등 소음허용기준이 엄격해지고 있다.
홍 구청장은 “단속 유형별로 보면 불법구조변경이나 안전모 미착용과 같은 자동차 관리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이 대부분”이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은 불편을 호소하는 소음 위반은 거의 적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해운대구는 오토바이를 제작할 때부터 소음허용 정도를 강화해 오토바이의 정상적인 운행이 굉음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관련 법령의 개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또 오토바이 불법 튜닝 단속을 강화하고, 배달대행업체에 직원 안전교육 협조를 요청하는 등 실질적인 소음 근절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편 해운대구는 오토바이 등 이륜차의 법적 소음허용기준을 낮추기 위한 공동연대를 결성하기로 했으며 각 정당 대선 후보에게 공약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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