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 해제’ 청원 실현 가능성은
관련 프로그램 일일이 개발 난제
밸브 노즐 등 車 손상 가능성도 커

“요소수 없으면 정관수술 하게 해달라”
요소수 품귀 사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물류대란'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요소수를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만이라도 경유 차량을 요소수 없이 운행할 수 있게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일부 사설업체에서 불법으로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를 해제하고 운행할 수 있도록 조작하는 일명 ‘정관수술’ 조치를 해왔는데, 이를 정부가 허용해주고 더 나아가 차량 제작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변경해 SCR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환경부는 200만대 가량의 화물차 SCR를 단기간 내 해제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런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사설업체에서도 해오고 있던 만큼 제작사가 직접 서비스한다면 짧은 시일 내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을 40대 중반의 화물업에 종사자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요소수 없이도 차량 시동이 걸릴 수 있게 SCR을 해제하는 걸 허용해야 하고 국내에 있는 자동차 브랜드서비스업체에 곧바로 차량 프로그램을 이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일반업자가 정관수술하는데도 차 1대당 20분 정도 소요된다”며 “정부가 마음먹고 한다면 일주일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10일 기준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390명 이상이었다. 과연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요소수는 차량 운행 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SCR이 장착된 차량의 경우 요소수가 없는 상태에서는 시동이 걸리지 않게 설정돼 있다. 충분한 양의 요소수가 확보될 때까지 이런 기능을 긴급하게 해제하는 게 기술적, 제도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경유 차량의 SCR을 해제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시호 연세대 자동차융합공학과 교수는 “지금 차량에 SCR은 요소수 센서에 요소수가 감지되지 않으면 출력을 낮추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 센서만 작동하지 않게 설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SCR을 해제하려면 차량 모델별 프로그램을 모두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 있는 화물트럭의 종류만 따져도 2.5t, 3.5t 다양하고 여기에 메이커별로도 다 다르다 보니까 여기에 맞는 전용 프로그램들을 전부 개발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또 개발비용을 제외하고 차량 한 대의 애프터서비스(AS) 비용만 대략 2만원이라고 해도 총 200만대에 4000억이 필요하고 원상 복구할 때도 그만큼 들어간다”고 말했다. 설령 해제한다고 해도 이후 밸브 노즐이나 환원촉매제 등이 손상되거나 기계적 결함이 발생할 우려도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뿐 아니라 현행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요소수 없이 운행할 수 없고, 무단으로 SCR을 탈거·훼손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를 개정하려면 국회의 입법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더욱이 SCR 없이 경유 차량을 운행할 경우 인체·환경에 유해한 물질 배출이 자유로워지는 만큼 법 개정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SCR 장착은 단순히 기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라며 “정부가 탄소 중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SCR를 끄도록 한다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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