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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멘도자에서 꽃핀 ‘위대한 시간 여행자’ 말벡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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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7 12:00:00 수정 : 2021-10-17 1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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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종 와인 컨설턴트 세계적 와인메이커 미셸 롤랑 웨비나 인터뷰/“가장 위대한 와인은 밸런스가 좋은 와인”/30여년전 아르헨티나 해발 1500m  황무지 우코밸리 잠재성 간파/보르도 7개 와이너리 모여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탄생 

멘도자 우코밸리 안데스산맥과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포도밭 전경

계절은 벚나무 타고 옵니다. 화사한 연분홍으로 봄날 열어주더니 시월 되면 가장 먼저 빨갛고 노랗게 단풍들며 가을이 시작됐음을 알리네요. 하지만 너무 아쉬워요. 사월 벚꽃처럼, 단풍들기 무섭게 바람에 우수수 흩날리며 밑동에 수북하게 이파리 떨구니까요. 비를 머금은 숲, 그리고 흙 내음 가득한 피노누아와 네비올로 와인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아, 가을 닮은 말벡도 있네요. 프랑스 남서부 까오르에서 태어나 머나 먼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멘도자에서 꽃을 피웠죠. 그래서 ‘위대한 시간 여행자’라 불리는. 눈 감고 가을향 가득 담긴 말벡 와인 혀끝에 모십니다. 농익은 과일향과 흙 내음 비강을 마구 뚫고 들어오며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으로 어서 떠나자고 손을 잡아끄네요.

끌로 드 로스 씨에떼 노을

#남미에서 꽃 핀 ‘위대한 시간 여행자’

 

메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국제품종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스파이시한 향 가득한 세련되고 차가운 도시 남자라면 메를로는 어질고 덕이 많은 여인 닮은 풍성한 과일향이 돋보이죠. 프랑스 말벡은 이런 메를로와 캐릭터가 비슷합니다. 한때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과 포므롤 위쪽 지역에서 많이 재배했죠. 하지만 메를로와 비슷한데도 메를로 보다 늦게 익어서 ‘서자’ 취급을 받았어요. 보르도에서 포도가 늦게 익으면 서리 피해의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죠. 그러다 1860년대 포도나무 뿌리를 병들게 하는 필록세라로 유럽의 포도밭이 황폐화됩니다. 설상가상 1956년 보르도에 큰 추위가 닥쳤고 서리로 그나마 남아있던 말벡의 75%가 죽어버리자 결국 생산자들은 말벡을 다 뽑아 버리고 메를로를 심게 됩니다.

말벡

반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적극적으로 말벡을 육성합니다. 필록세라 광풍이 불기전인 1852년 32살의 프랑스 농학자 푸제(Pouget)를 고용, 칠레의 킨타 노르말 농작물 연구소에서 말벡,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품종을 들여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는 주 의사당에 킨타 노르말 농작물 연구소를 설립할 정도로 적극 지원, 1853년부터 말벡 품종이 멘도자(Mendoza)에 안착해 널리 퍼지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이처럼 오랫동안 말벡을 대표 품종으로 키운 결과 이제 아르헨티나 와인하면 말벡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해졌답니다.

포도밭을 일구기 전 우코밸리 모습
현재 우코밸리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포도밭 전경

#해발 1500m 햇살 먹고 자라다

 

같은 품종이지만 프랑스 말벡과 아르헨티나 말벡은 많이 달라요. 둘 다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 향이 대표적이지만 아르헨티나 말벡은 자두, 건포도 등 과일의 진한 농축미가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커피, 초콜릿, 바닐라, 바이올렛 꽃향이 매력적으로 더해집니다.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햇살 덕분에 좀 더 두꺼운 껍질의 탄탄한 말벡이 생산되기 때문이죠. 탄닌의 질감은 둥그럽고 매끄러우며 힘찬 풀바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멘도자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70%가 생산되는 주요 산지인데 뛰어난 와인을 빚는 생산자들은 대부분 고지대에 포도밭을 일굽니다. 포도는 일교차가 큰 곳에서 좋은 산도를 얻는데 안데스 산맥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기운을 막아버립니다. 이에 생산자들은 좋은 산도를 얻으면서도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잘 받아 포도가 잘 익는 높은 산으로 계속 올라갔죠. 보통 1000m에 달하고 좋은 포도밭은 1500m까지 올라갑니다. 우코밸리(Uco Valley)가 대표적이에요. 가장 높은 포도밭은 3000m인 카파야트로 백두산(2700m)보다 높답니다.

미셸 롤랑

천재 와인메이커이자 컨설턴트 미셸 롤랑(Michel Rolland)이 이런 곳을 그냥 둘리 없죠. 이미 30여년 위대한 와인이 탄생할 잠재성을 간파하고 황무지를 포도밭을 일궜고 우코밸리에서 탄생한 밸런스 좋은 와인이 끌로 드 로스 씨에떼(Clos de Los Siete)랍니다. 코로나19로 방한하지 못했지만 그를 웨비나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제너럴 매니저 라미로 바리오스(Ramiro Barrios)씨가 진행했습니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 2018

#천재 컨설턴트 미셸 롤랑, 우코밸리를 선택하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 2018은 말벡 55%, 메를로 19%, 시라 12%, 카베르네 소비뇽 10%, 쁘띠 베르도 2%, 카베르네 프랑 2%를 블렌딩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말벡과 보르도 대표 품종들이 대거 결합된 독특한 와인이네요. 손 수확한 포도를 11개월 동안 숙성시키는데 70%는 오크 배럴에서, 30%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되고 병입 과정에서 잔여물을 거르는 필터링은 안합니다. 신선하고 잘 익은 진한 자두,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과 향신료 향이 비강을 채우고 입에서는 진한 과일의 농축미가 느껴집니다. 기분 좋은 산도와 매끄러운 탄닌까지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밸런스가 좋습니다. 하지만 2018 빈티지라 아직 영하며 2∼3년 정도 더 숙성하면 더욱 맛있게 익어갈 겁니다. 필터링을 하지않은만큼 병속에서 계속 진화하는 모습도 보여주겠네요. 밸런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롤랑의 양조철학이 잘 담겼습니다. 와인은 현재 하이트진로에서 수입합니다.

미셸 롤랑 웨비나

롤랑은 1999년 처음으로 우코밸리에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2002년이 첫 빈티지라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올해 스무살 청년이 됐습니다. 롤랑이 우코밸리의 잠재력을 발견한 것은 30여년 전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와이너리에서 컨설팅을 요청해 아르헨티나를 찾았어요. 당시만 해도 이곳 생산자들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큰 카베르네 소비뇽 이나 메를로 같은 보르도 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있더군요. 와인의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흥미로운 말벡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나만의 아르헨티나 와인이 빚고 싶어졌어요. 꿈을 실현하려고 좋은 조건을 갖춘 멘도자의 땅을 찾아 나섰답니다.”

멘도자 떼루아 다섯가지 중요 요소

뛰어난 일조량은 낮에 포도를 잘 영글게 하고 안데스의 높은 고도 덕분에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져 포도는 신선한 산도를 잔뜩 움켜집니다.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남으려고 포도나무는 뿌리를 땅속 깊게 내리고 덕분에 토양의 다양한 미네랄 성분을 잔뜩 끌어 올립니다. 건조하지만 안데스의 만년설이 녹아 흐른 신선한 물로 물을 공급할 수 있죠. 이런 조건은 말벡이 자라기 아주 뛰어난 환경입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르헨티나 생산자들이 이런 요소들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는데 롤랑은 이를 단숨에 파악합니다. 그가 세계적인 양조가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포도밭 구획

“포도밭을 찾아다니다 2년 뒤 발견한 땅이 우코밸리에 있는 아름다운 황무지로 지금의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포도밭입니다. 저는 100~150ha 정도 규모의 땅을 찾았는데 소유자는 850ha를 통째로 매입하길 원했죠. 제 고향인 포므롤 전체와 맞먹는 엄청난 면적이에요. 이에 컨설턴트 했던 보르도의 고객이자 친구인 와이너리 오너들에게 우코밸리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여섯 명의 파트너를 끌어 들여 모두 일곱 명이 포도밭을 사들였죠. 이 땅을 7개 구획으로 나눠 각자 와인을 만들면서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와인이 바로 끌로 드 로스 씨에떼랍니다.” 롤랑이 남미에서 새 와인을 선보이자 세계의 평론가들은 ‘보르도 최고의 별들이 만나 아르헨티나에서 또 다른 별을 탄생시켰다’고 극찬합니다. 영국의 디캔터 매거진은 ‘미래의 아이콘 와인 TOP 10’에 끌로 드 로스 씨에떼를 선정합니다. 씨에떼(Siete)는 스페인어로 숫자 7로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7개의 구획’이란 뜻이에요. 최초 프로젝트에 참여한 7개 가문을 뜻하며 별 모양 가운데 C7을 새긴 로고를 레이블에 담아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 롤랑 모든 양조과정을 지휘하기에 그의 이름도 레이블에 담았습니다.

웨비나에 참여한 미셸 롤랑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투자자들

샤또 레오빌 푸아페레(Chateau Leoville-Poyferre)의 소유주인 뀌벨리에(Cuvelier) 패밀리, 프랑스의 가장 큰 크리스탈 글래스 웨어 회사 소유주의 딸이자 샤토 르 가이 포므롤(Chateau Le Gay Pomerol), 샤토 몽비엘 포므롤(Chateau Montviel Pomerol), 샤토 라 그라비에레 라랑드 포므롤(Chateau La Graviere Lalande de Pomerol)을 소유하고 있던 카트린 페레 베르제(Catherine Pere-Verge), 다쏘 전투기 제조사 소유주이자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쎄 샤또 다쏘(Chateau Dassault)의 로랑 다쏘(Laurent Dassault), 로칠드 가문의 벤자민 드 로칠드(Benjamin de Rothschild), 샴페인 생산자이자 생테밀리옹에 포도원을 소유한 돌랑(d’Aulan) 패밀리, 샤또 레오빌 말라틱 그라비에르(Chateau Malartic-Lagravière)의 보니(Bonnie) 패밀리가 그들입니다. 현재는 보니 패밀리의 디암 안데스(Diam Andes) 와이너리, 뀌벨리에 패밀리의 뀌벨리에 로스 안데스(Cuvelier Los Andes) 와이너리, 페레 베르제 패밀리의 몬테비에호(Monteviejo) 와이너리와 롤랑이 생산에 참여합니다.

웨비나를 진행하는 GM 라미로 바리오스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황무지에서 보석을 캔 롤랑의 집념

 

롤랑은 왜 황무지이던 우코밸리를 선택했을까. “우코밸리를 선택하기 전에 이미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캘리포니아, 칠레 등 많은 나라를 다니며 조사했습니다. 우코밸리 황무지에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좋은 결정은 아니었죠. 하지만 저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믿고 이 땅을 선택했습니다. 우코밸리의 토양은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는데 화산암 위에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자갈과 모래가 덮은 충적성 선상지입니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라 레몬타(La Remonta) 충적성 선상지의 북부에 있는데 완벽한 동향 언덕과 북향 언덕이죠. 동향은 차가운 바람이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기에 심한 서리 피해를 막아주고 남반구라 북향은 태양 노출도가 더욱 뛰어납니다. 충적성 선상지는 대부분 아르헨티나 정부 소유인데 끌로 드 로스 씨에떼가 유일하게 이곳에 포도밭을 갖고 있답니다. 비가 아무리 세차게 내려도 깊은 땅속 큰 바위를 통해 스며들고 경사진 땅이라 배수가 잘 된답니다. 많은 곳에서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지만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20년동안 단 한차례의 우박 피해만 있었답니다. 이는 제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미셸 롤랑
끌로 드 로스 씨에떼

롤랑은 2018년을 환상적으로 뛰어난 품질의 포도를 수확한 그레이트 빈티지로 꼽네요. “지금 까지 그렇게 나빴던 해는 없었습니다만 2018 빈티지는 일반적인 빈티지와 비교해서 매우 뛰어난 과실과 균형감, 즐기기 좋으면서도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와인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만드는 끌로 드 로스 씨에떼는 오랜 숙성을 거치지 않더라도 항상 편하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반면 2016 빈티지는 비가 꽤 많이 왔고, 습한 날씨여서 숙성 잠재력은 좀 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플해서 마시기 편하고 부드럽다고 평가한다는 군요.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와인 컨설팅을 하기에 롤랑은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로 불린답니다. 그가 컨설팅한 와인만 400종이 넘으니 ‘와인 메이킹의 달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처럼 오랫동안 와인을 만든 롤랑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완벽한 밸런스라는 군요. “향보다는 입안에서의 느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 입에 닿았을 때와 중간, 그리고 마지막까지 입안에서의 당도와 질감, 산도, 탄닌, 여운 등 모든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위대한 와인이 탄생한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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