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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초기 강한 개혁 성향의 청와대 386참모들은 보수성향의 고건 총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며 고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고 총리는 ‘행정의 달인’답게 국정을 매끄럽게 이끌었다. 그러자 386 참모들 사이에서 “고 총리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겠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권한대행 시절 이처럼 행정공백을 잘 메운 그는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실패한 인사”라고 공격하자 맥없이 밀리며 지지율이 급락했고, 2007년 1월 불출마를 선언하고 만다.

우리나라 대선과 관련한 징크스 중 하나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총리 출신은 대권 도전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총리 징크스’의 대표적 인물은 ‘영원한 2인자’ 고 김종필(JP) 전 총리다. JP는 고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으나 대통령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회창 전 총리는 총리 출신 중 대권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아들 병역문제가 터지며 DJP연합을 이끌어낸 DJ에게 39만표 차로 무릎을 꿇었다. 16, 17대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노무현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 이명박정부의 정운찬 전 총리도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뜻을 펼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도 이낙연, 정세균, 황교안 등 3명의 총리 출신 주자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모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국민의힘 경선에 나선 황교안 전 총리는 2차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빅3’로 꼽혔던 정 전 총리는 중간순위가 4위로 밀리자 중도사퇴했다. 이 전 총리도 지난 10일 마지막 경선을 마치고 중도사퇴 후보의 ‘무효표 처리’를 문제삼았으나 사흘 후인 그제 승복선언을 하고 만다. 총리 출신의 대권 도전이 실패하는 것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아닌 데다 정권의 이미지와 겹치며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의전총리, 대독총리 소리를 듣는 대통령제 아래 총리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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