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곰팡이 냄새나는 계단 밑이나 창고서 ‘휴식 아닌 휴식’"

입력 : 2021-10-13 18:43:07 수정 : 2021-10-13 18:57: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휴게실 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

청소노동자 대부분 계단 밑 휴식
‘방문서비스’는 고객 집 계단 이용
‘가전·통신’은 업무 공간도 창고

2022년 8월 휴게실 설치 의무화에
근무조건 변경 등 꼼수 움직임도
1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휴게실 실태 현장 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변인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 미화분과장이 열악한 휴게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운 겨울날 비품창고에서 담요를 두르고 앉아 쉬다가 펑펑 운 적도 있습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변인선 미화분과장은 13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원에서 열린 ‘휴게실 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학교 어디에도 청소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쉴 공간이 없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학교 측이 교직원 당직실을 휴게실로 쓰라고 했지만, 여기는 남녀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아 여성 노동자가 마음 편히 옷도 갈아입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곰팡이 냄새가 나고 냉난방 시설이 없는 계단 밑이나 창고 등에 쪼그려 앉아 ‘휴식 아닌 휴식’을 한다고 덧붙였다.

변 분과장은 “학생 수가 줄면서 빈 교실은 늘어나는데 우리를 위한 공간은 마련해주지 않는다”며 “학교는 학생들과 선생님만 있는 곳이고 우리는 유령인간”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8월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변 분과장 같은 청소노동자와 급식실 조리 노동자, 가전설치·방문점검 노동자 등은 여전히 제대로 된 휴게실이 없어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수기, 비데 등을 점검하기 위해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방문서비스노동자는 휴식공간이 아예 없어 고객의 집 앞 비상계단이나 차 안, 물류 창고 등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박상웅 전국가전통신노조 노안국장이 1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휴게실 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 박상웅 노안국장은 “우리는 어차피 이동해야 하니 휴게시설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코웨이에서 설치·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담당하는 서비스매니저는 업무공간조차도 사무실이 아닌 물류창고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렇게 물류창고에 마련된 업무공간에는 휴게시설은커녕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 가전통신노조가 방문서비스 노동자 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창고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무공간으로 마련된 물류창고에 ‘휴게공간이 있다’는 응답은 8.9%밖에 되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12.8%,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이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21.6%밖에 되지 않았다.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개정 산안법이 내년 8월 본격 시행되는 가운데 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잇따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의료노조 A병원 미화 노동자가 1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휴게실 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정명재 지부장은 “그동안 코레일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열악한 휴게 시설과 샤워실 등을 방치했다”며 “내년 8월부터는 법적으로 휴게 시설 설치 및 관리를 해야 하니 휴게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근무조건을 바꾸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개정 산안법의 하위법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휴게실 설치 의무 대상을 ‘전체 사업장’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정방문노동자처럼 이동이 잦은 노동자에 대해서도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거점 장소에 휴게시설을 마련하게끔 사업주 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번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는 등 예외를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며 “휴게 시설은 노동자의 복지나 사업주의 시혜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