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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최재형의 실패로 본 한국정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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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2 23:43:59 수정 : 2021-10-12 23: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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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 벽 못 넘고 석 달 만에 퇴장
준비부족·급격한 우클릭 몰락 재촉
강한 리더십 동시에 외연확장 중요
지지층만을 향한 정치로는 못 이겨

#1 6월28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미 전부터 사퇴 가능성이 흘러나왔던 터라 언론은 최 전 원장의 정치 선언이 임박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작 그날 눈에 띄었던 것은 최 전 원장이 쓴 마스크 왼쪽에 자리한 태극기였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최 전 원장의 사퇴 회견도, 향후 가능성 있는 전망과 과거 미담보다도 더 각인됐던 것은 그의 태극기였다.

 

#2 “준비된 답변이 없어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충분히 준비가 안 돼서 죄송합니다.” 8월4일 최 전 원장은 사퇴 37일 만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구조 개편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업규제 철폐에 대한 질문에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도 “공부를 더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국민이 마음껏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마음껏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자신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 됐다.

이우승 정치부장

최 전 원장은 지난 8일 국민의힘 제2차 예비경선 4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그는 처음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버금가는 잠재력이 있는 우량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정치 입문 전인 7월29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지지율 5.5%를 기록해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 전 총장,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에 이어 4위를 기록했고, 8월4일 정치 선언을 한 그다음 주인 8월 2주차 조사에서도 6.1%로 역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국민의힘 2차 컷오프 직전인 9월 5주차 조사에서는 불과 1.0%였다.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 뒤진 10위였다. 대권 도전 3개월여 만에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허망하게 몰락했다.

그의 도전과 실패에는 우리 정치의 속성이 담겨있다.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중도층을 아우르는 전략의 중요성이다. 강한 리더십을 통해 자기 진영의 지지를 유지하고 동시에 외연 확장을 위한 행보가 함께 가야 한다. 최 원장은 우선 강인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복합위기에 있는 한국은 사회·경제·정치 곳곳이 지뢰밭이다. 국민은 강력한 지도자에게 의지하려는 심리가 있는데, 그 이미지를 심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여야 양강 주자인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대응과 대비가 된다.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의 책임을 묻는 야권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힘 게이트’로 밀어붙이며 반격했다. 밀리지 않는 배짱과 호기가 이 지사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위기에 몰렸던 윤 전 총장도 9월 8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돌파했다. 정치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내가 그렇게 무섭나”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흔들리던 지지자들의 마음을 잡았다. 내년 대선을 향해 여야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강한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강한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적 내전 상태를 종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죄송하다. 좀 더 공부하겠다”는 답변은 한참 기대에 못 미쳤다.

한국은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의 사회다. 진영 정치의 부작용으로 실정과 잘못에도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반대로 중도층의 지지가 없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지자들의 전략적 투표는 본선 경쟁력을 계산한다. 지지층만을 향한 정치는 진영 내에서도 폭넓은 지지의 걸림돌이 된다. 최 전 원장의 급격한 우클릭 행보는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 감사원장 사퇴 기자회견에서의 태극기가 눈에 밟혔던 이유다.

진영 정치로 자기 지지율은 지킬 수는 있다. 선거에서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 4·7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39.1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다. 중도층을 끌어안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안팎으로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지만, 민주당과 여권이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지층만을 향한 정치는 내년 대선 필패의 공식이다.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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