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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vs “살인 안 돼”… 노부모, 조현병 딸 살해에 갑론을박

입력 : 2021-10-11 23:00:00 수정 : 2021-10-11 18: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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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심해지자 본인들 죽은 뒤 우려
아들에 양육 맡기려고 범행 모의
살해 父 5년형·방조 母 집유 4년
재판부 “10년간 보살핀 점 참작”

“오죽하면 조현병을 앓던 자신의 딸을 살해했겠느냐.” vs “사정은 알지만 살인은 용서가 안 되는 중대범죄다.”

조현병에 걸린 딸을 10여년간 돌보던 70대 부부가 외손녀 양육 문제를 우려해 딸을 살해·방조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조현병은 뇌 신경세포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신경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환자는 피해망상 및 환청이나 환각, 행동이상 등을 나타낸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부(재판장 권순향)는 살인과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체은닉미수와 살인방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아내 B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40대인 딸 C씨와 그의 딸을 부양하던 지난 4월 20일 집에서 미리 준비한 도구로 C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당시 부부는 딸의 시신을 인근 공터에 파묻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옮기지 못해 미수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부부는 이후 장의사를 불러 “자고 일어나니 딸이 죽어 있었다”며 시신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장의사가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자 112신고로 딸의 죽음을 알렸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부부를 상대로 집중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들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딸의 조현병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자신들이 죽으면 아들이 외손녀를 양육하도록 하기 위해 1년 전부터 딸을 살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 딸은 2013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약 5년 전 자신의 딸과 함께 친정에 들어와 함께 산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살인범죄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로 엄중한 책임이 뒤따르고 장기간 구체적인 살해 방법을 계획하는 등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들이 10년 동안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와 손녀를 보살펴 왔고, 사망 후 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등 범행 경위에 다소나마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인터넷상에는 ‘손녀를 위해 조현병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법은 온정을 베풀 수 없었나?’, ‘오죽하면 자기 자식 목을 졸랐겠어요?’ 등 판결이 가혹했다는 글이 잇따랐다. ‘미국이었으면 최소 징역 50년이다. 범죄에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 등 중대범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만재 포항지역 사회복지연구소 소장은 “정신질환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2%에서 발견되지만, 이 중 4분의 1만이 진단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및 각 지자체는 전국 보건센터의 정신질환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와 함께 보다 강화된 안전장치 마련 등 더욱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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