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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있으면 뭣하나”… 첨단 무기 배치 늦어지는 이유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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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0 06:00:00 수정 : 2021-10-08 20: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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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K-1A1 전차가 장애물을 넘기 위해 설치된 교량을 지나가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의 올해 국방비는 52조 8401억원. 세계 10위권의 군사비 지출 규모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무기를 개발하거나 구매하는데 쓰이는 방위력 개선비는 16조 9964억원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무기를 도입하지만, 국내 방산업체나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확보한 국내 기술로 무기를 개발 및 생산하는 사례도 많다. ‘우리 손으로 만든 무기로 우리나라를 지킨다’는 인식이 확산된 이유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 개발한 국산 무기의 전력화가 늦어지거나, 노후한 장비가 수명을 초과한 채 일선에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이 필요로 하는 장비가 제때 보급되지 않으면, 군 전력증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전시회에서 전시된 K-15 기관총. 세계일보 자료사진

◆‘주먹구구’ 운용성능 설정 문제

 

한국군이 무기를 도입할 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작전운용성능(ROC)이다. ROC를 충족하지 못하는 무기는 한국군이 구매하지 않는다.

 

무기도입사업 추진과정에서 ROC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특히 국내 실정에 맞는 ROC가 설정되어야 사업 추진이 순조롭고, 한국군의 전력증강 효과가 극대화된다.

 

문제는 ROC 설정이 면밀한 검토 없이 진행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1991년 개발된 K-3 기관총을 교체하기 위해 2051억원을 들여 1만4000여정의 K-15 기관총을 생산하는 경기관총-Ⅱ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처음 제시된 경기관총-Ⅱ의 ROC에는 유효사거리 800m에서 3.43㎜ 연강판을 관통해야 합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험 사격을 해보니 800m 거리에서 연강판을 관통하지 못했다. 운동에너지와 탄환속도는 당초 예상대로 나왔으나 연강판을 뚫지 못했다.

육군 AH-1S 공격헬기가 지상 표적을 향해 로켓탄을 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결국 합참은 지난해 9월 600m 거리에서 연강판을 관통하면 합격하는 것으로 소요를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1년 가까이 사업이 지연됐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 3.43㎜의 연강판을 관통해야 하는가다.

 

1960년대 초 미국 아말라이트(콜트)에서 M-16 소총을 개발할 때, 미군 M-2 헬멧 관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와 동일한 소재와 두께인 3.43㎜ 연강판으로 관통력 시험을 했다.

 

이때 시험과정은 국내에서 개발된 5.56㎜ 총기의 관통 능력 평가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고 김 의원실은 밝혔다. 60년 전 미국의 ROC가 2020년대 이후 한국군 보병이 쓸 미래 총기의 성능평가에 사용되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중인 소형무장헬기(LAH)가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60년전 ROC를 쓰다 보니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3.43㎜ 두께의 연강판을 제조하는 회사가 없다. 외국 업체를 대상으로 수소문을 해야 한다. 오래된 ROC 때문에 개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고충을 겪게 된다.

 

K-2전차 엔진 변속기 국산화 사업도 이와 비슷하다. K-2 전차는 3차 양산까지 260대가 생산됐다.

 

2, 3차 양산에서는 국산 엔진에 독일산 변속기를 사용했는데, 국내에서 개발한 변속기가 내구도 시험 기준인 ‘9600㎞ 주행’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기준은 미군이 1970년대 제시한 M-1전차 내구도 규격에서 유래했다. 미국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의 거리가 4800㎞인데, 이를 왕복하면 9600㎞다. 50년 전 기준이 쓰이는 셈이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2020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서 K-2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반도는 미국보다 면적이 훨씬 좁다. 전차가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전용 트레일러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K-2 전차가 자체 동력으로 이동 소요를 100% 충당하지는 않는다. K-2 전차에 9600㎞ 내구도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이같은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K-1A1 성능개량 소요가 제기됐을 때, 일선 전차부대 장병들은 “아주 더운 날에는 열사병에 시달린다. 적군이 화생방 공격을 하면 전차병들이 폭염 속에서 방독면을 쓰고 싸워야 한다”며 에어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에어컨이 전차 훈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전차병들은 그 정도 더위를 참을 수 있다”며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려면 국내 기술과 일선 부대 실정, 한반도 환경에 맞는 ROC가 필요하다. 단순히 외국 사례를 ‘복붙’하거나 과도한 성능을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기술 수준, 야전부대 실태와 요구 등을 면밀히 검토해 ‘한국형 ROC’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를 반영, ROC 변경이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기존 ROC를 고수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 발전 상황을 반영해 성능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진화적 ROC’를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2020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서 바이어들이 총기를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후 무기 대체도 늦어진다

 

1980년대 이후 각 군에 도입된 무기들은 현재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대체 전력이 적절한 시기에 배치될 필요성을 높인다.

 

하지만 노후 장비를 대체할 무기는 전력화가 늦어지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육군 공격헬기 280여 대 가운데 230여 대가 수명을 10년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AH-1S와 500MD를 대체하는 국산 소형무장헬기(LAH) 등의 전력화가 완료되려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공격헬기 전력을 유지하려면 당분간 노후 기종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육군에서 운용중인 M-48A5K 전차도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에 따르면, M계열 전차는 기준수명(25년) 대비 13~14년 이상 초과 운용되면서 수리부속 확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기동력과 화력, 방호력이 취약하고 유지비도 비싼데다 잔존가치도 없어 ‘깡통전차’라는 평가도 받는다. 세계적 수준의 성능을 지닌 K-2 전차를 개발해놓고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퇴역한 M계열 전차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노후 전력의 대체가 그만큼 늦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육군은 2019년 K-2 전차 4차 양산 소요를 제기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260여 대가 생산된 K-2 전차를 추가로 만들면, 기계화보병사단에 배치된 K-1A1 전차를 기갑여단으로 배치하고, 기갑여단이 쓰던 K-1E1 전차를 동원사단으로 보내면 M-48A5K 전차를 퇴역시킬 수 있다.

육군 M-48 전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육군의 소요제기에 대해 합참은 지상군 구조 발전과 미래 기갑전력 구상 등을 감안해 검토중이라는 입장이다. K-2 전차 3차 양산이 2023년 종료될 예정이라 내년 중으로는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국방개혁에 따른 상비사단 감축으로 유사시 작전 비중이 높아진 동원사단의 장비 노후화는 훨씬 심각하다.

 

동원사단 포병 전력은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든 105㎜ 곡사포다. 그런데 동원사단에서 견인포 조작을 맡는 예비군 중 상당수는 현역 시절 K-105A1 자주포를 운용했다. 현재 운용중인 구형 장비 조작 숙달 훈련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현역 시절 자주포를 다뤘다면 전역 후 동원부대에서도 자주포를 쓰는 것이 유사시 전방 전투부대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방 전투부대와 동일한 신형 장비를 동원부대에도 빠르게 보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육군 포병들이 가상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동원부대가 필요로 하는 신규 장비의 소요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합참의 동원부대 신규 장비 소요결정은 15년간 26건에 그쳤다. 전력화가 추진돼도 동원부대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기존에 설정된 현대화 계획은 전방 부대 장비를 전환하는 수준이다.

 

6.25 전쟁 당시 미국에서 원조받은 무기로 싸웠던 한국은 주요 군사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지닌 첨단 무기를 개발해 생산하고 수출까지 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신 무기라도 필요한 곳에 제때 배치되지 못한다면 군사적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작전요구성능 설정과 더불어 일선 부대의 소요를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고려, 충족할 수 있도록 군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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