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서울 원서동 박인환 살던 곳

관련이슈 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1-10-08 22:55:34 수정 : 2021-10-08 22:55: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보통학교 다닐 때부터 살던 동네
돌발 죽음엔 이상의 혼 스며있어

한때 창덕궁 후원에 사로잡힌 시절이 있었다. 이 나라의 전통을 목마르게 찾던 그 무렵, 창덕궁 하고도 후원은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혼자 창덕궁 뒤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후원에 가 있으면, 이 세계의 어떤 싸움도, 혼란도 침습해 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30대 후반의 나이에 나는 몹시 지쳐 있었고, 어떤 안식이 필요했다.

오늘 내가 향하는 곳은 그 후원의 창덕궁 서쪽 원서동이다. 거기 지번으로는 134-8, 도로명으로 창덕궁길 47-4에 박인환 집터가 있다는 것이다. 1926년생인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다니던 중 4학년 때부터 ‘서울사람’이 되는데, 그 살던 동네가 바로 이 원서동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나는 박완서 소설 ‘나목’에 등장하는 계동 쪽으로 해서 원서동으로 들어간다. 이 계동 어딘가에는 작가 채만식이 다니던 중앙고보도 있었다. 그는 그때 부친이 아프다는 전보를 받고 고향 임피에 내려가 고부 은씨 선흥 여인과 이른 결혼을 했다. 3·1운동 때 기록을 보면 경성의전 학생들, 중앙고보 학생들이 앞장섰고, 채만식이 같이 하숙하던 고향 친구 둘도 체포돼 신문을 받고 있다. 채만식도 필시 만세를 불렀지만 달리기를 잘해서 무사했을 것이다.

계동까지는 이래저래 자주 와 봤지만 창덕궁 궐담 아래 원서동은 첫 출입이다. 남의 나라 버젓한 궁궐을 ‘원’으로 깎아내리고 그 서쪽이라 하여 원서동, 남쪽이라 해서 원남동이라 했다. 일제의 강점 방식은 어지간히도 지독했다.

한정식집 용수산을 끼고 왼쪽으로 꺾어드니 바로 창덕궁 돌담길 박인환 집터 번지수가 바로 코앞이다. 그런데 창덕궁길 47-2도 있고 47-3도 있는데 47-4는 없다. 47-7도 있고 47-8도 있는데 그 사이에 있어야 할 47-4, 47-5, 47-6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주차장과 나지막한 창고 위로 텅빈 집터뿐이다. 바로 이 창고 위 공터 자리가 박인환 어렸을 적 살던 집이다. 창덕궁이 건너다 보이던 이 2층집은 2015년까지도 남아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자취가 없다. 집터라 했고, 없어졌다고 했으니 알고도 그냥 찾아온 것이다. 사라진 번지수 옆 카페 ‘마고’에서 생강차를 사들고 박인환을 생각하며 궐담 밑을 걸어보기로 한다.

박인환은 한국 나이 불과 31세로 1956년 3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무슨 일인지 일제강점기 문학인 이상의 기일을 3월 17일로 오해하고 추도식을 치렀고, 그날부터 내리 3일간 술을 마셨다 했다. 그러니까 그의 돌발적인 죽음에는 28세 나이로 요절한 이상의 혼이 스며들었던 것이다.

이 이상과 박인환을 연결해 준 사람은 구인회의 한 사람이요 시인 및 비평가로서 문명 높던 김기림이었다. 그는 해방 직후 박인환이 평양의전 다니다 말고 서울로 내려와 세운 서점 ‘마리서사’의 단골손님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임화와 함께 보성고보 후배인 이상의 유고집을 내려 했고, 해방 후에 임화 없는 서울에서 홀로 ‘이상 선집’(백양당, 1949)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박인환은 김기림을 매개로 한, 이상 문학의 현대성의 가장 중요한 계승자였다. 사람들은 박인환을 1921년생 김수영과 자주 비교하지만 오히려 나이 어린 그가 문학사적으로는 앞자리에 놓인다. 그가 주도한 동인지 ‘신시론’(1948)과 ‘새로운 시민들의 합창’(1949), 그리고 명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이 바로 그 증좌다.

평일 오전 11시의 원서동 길은 고즈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기념하는 미술관도 문을 닫았고 ‘백홍범 가옥’으로 통하는 막다른 골목길에는 털빛 누런 줄무늬 괭이 한 마리가 내방객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골목길 돌아나오다 옛날식 ‘굴뚝’이 남아 있는 나지막한 집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내 생에 다시 태어나면 이 창덕궁길 35번지 지붕 낮은 집에서 살았으면 한다. 옛날의 이 ‘원골’에서 살던 촌은 유희경처럼 시나 쓰면서 무심한 한평생도 좋지 않겠는가?

유희경을 생각하니 이매창이 생각나고, 그러자 그녀를 소설로 쓰고 지금 세상에 없는 최옥정씨가 생각난다. 삶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덧없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