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등 전문분야 특화 플랫폼 기업들
고객·전문직 잇는 창구 개설 경쟁 가열
변협, 불법 알선행위 등 이유로 반발
플랫폼 업계선 “업체들 광고로 수익”
의료·부동산·제약업계로 갈등 확산
일각 “관련 법규·제도 논의 서둘러야”

“소형 로펌이라 사건 수임이 많지 않아 플랫폼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죠.”
지방로스쿨을 졸업한 2년차 변호사인 최모 변호사는 법률 플랫폼인 로톡을 사용한다. 수임이나 상담이 없는 자투리 시간에 로톡에서 만난 의뢰인과 상담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로톡 사용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한다고 나서면서 로톡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사무실 운영이 빠듯할 때가 많은데 플랫폼 이용까지 눈치를 보고 있어 골치가 아프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변호사 생활을 한 지 20년차가 넘은 서초동의 이모 변호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변호사는 실력과 지금까지의 수임 실적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톡에 광고를 하면서 젊은 변호사들이 무분별하게 사건을 수임하면 결국 피해는 의뢰인에게 돌아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로톡이라는 플랫폼이 법률시장에 고착화되면 결국 로톡에 광고를 하지 않는 유능한 변호사들, 특히 연차가 있는 변호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이른바 ‘士(사)자직업’으로 인정받던 전문직 시장에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경보음이 켜졌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각 전문분야 특화된 플랫폼 기업들이 고객들과 전문직을 잇는 창구역할을 하면서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대거 변호사 인원이 늘어난 법률시장을 비롯해 의료와 약사업계 등 지금도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 전문직종은 이제 플랫폼과의 경쟁을 치르고 있다.

◆전문직과 플랫폼 전쟁 불 지핀 로톡 논란
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두 변호사의 이야기와 같이 최근 이 같은 전문직 시장과 플랫폼 간의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로톡과 대한변협의 갈등이다. 스타트업인 로앤컴퍼니는 2014년 자신의 상황에 맞는 사례와 변호사를 찾고 상담받을 수 있는 IT 서비스인 ‘로톡’을 시작했다. 당시 로톡은 법률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수임료 투명화, 법률 서비스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 등을 기치로 내걸었다. 로톡에는 올해 초 기준 4000명가량의 변호사가 가입해 있다. 지난 5월 대한변협이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에 나선다고 밝힌 이후 변호사들의 이탈이 있었지만 전체 변호사가 3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문제는 로톡의 수익모델이다. 로톡은 중개수수료를 없애는 대신 로톡 회원 변호사가 지불한 ‘광고비’로 돈을 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변협 등 관련 단체는 로톡 등 IT 플랫폼이 추구하는 모델은 현행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배달의 민족 등 고객과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이윤 중 일부를 수수료 형태로 챙긴다. 하지만 법률시장의 경우 변호사 아닌 사람이 법률사무소를 운영 및 개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당연히 알선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이에 로톡은 플랫폼에 변호사들을 소개하는 광고비만을 받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로톡과 대한변협 간의 갈등이 헌법소원과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로까지 번지자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나서 리걸테크 TF를 출범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지난달 리걸테크 TF 발족식에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리걸테크 산업이 국민들에게 다변화된 법률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해 권익을 구제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산업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기초가 되는 법·제도를 설계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로톡과 대한변협의 갈등이 점화된 게 이미 올해 초인데, 이제서야 관련 부처가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결국 정부가 나서서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업계에서부터 부동산, 제약업계까지 갈등
비단 법률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에서부터 건물의 시세 산정 서비스, 의약품 배달서비스 등 곳곳에 스타트업과 전문직 단체들이 대립하는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고수익 직종인 의사들도 강남언니와 바비톡 등 성형 및 미용 정보 플랫폼의 등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톡의 사례처럼 단순광고라는 플랫폼 측의 입장과 병원을 소개해 주고 대가를 받는 서비스는 불법이란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제약을 배달하는 ‘닥터나우’도 대한약사회 반대로 논란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제로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약국 점포 외에 의약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는 약사법 규정은 여전히 도화선으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국내 최대 세무회계 플랫폼 자비스앤빌런즈는 현재 한국세무사회가 고발한 세무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부동산에 IT 기술을 접목한 프롭테크 스타트업 ‘빅밸류’와 감정평가 업계 간 갈등도 대표 사례다. 이 같은 플랫폼 기업과 기존 전문직 단체와의 갈등 배경에는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전문직들이 종사하는 사업영역은 이른바 ‘레몬마켓’이라고 불리는 비대칭적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시장분야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급증하면서 법률서비스의 높이가 낮아지길 바랐던 정부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법률서비스는 국민들에게 멀고도 어려운 분야다. 실제로 2019년 로앤컴퍼니가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는 변호사’를 묻는 질문에 전체 73%가 ‘전혀 없다’, 21%가 ‘1명 있다’, 4.9%가 ‘2명 있다’로 답했다.

하지만 각 전문영역의 소비자와 전문가를 잇는 스타트업들이 전문 서비스 시장에 등장하면서 이러한 레몬마켓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란 분석이다. 이제 전문직 종사자들은 플랫폼에서 다른 전문직들과 경쟁하기 위해 상담비용과 자신의 스펙을 공개하게 되고 이는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켰다. 서울 소재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의사 입장에서는 플랫폼 광고비 등이 추가로 지출된다”며 “플랫폼에서의 평가가 중요해지면서 플랫폼이 ‘갑’인 관계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각 분야의 플랫폼화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은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소비하는 틀을 시대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좀 더 편리하게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플랫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플랫폼, 이용 접근성 개선해 시장 규모 키워”
“플랫폼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영역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전체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8일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 포럼 대표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플랫폼 기업과 기존 전문직 단체들과의 갈등에 대해 “플랫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글로벌 시장을 보면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의 서비스 이용 접근성이 증가해 결국 시장 자체를 키우게 된다”며 “전문직 종사자들의 (플랫폼 스타트업을) 적이 아닌 우군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된 대한변호사협회와 의사협회 등 단체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법률은 이미 플랫폼 기업에서 자문 등 검토를 통해 국내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서비스로 인증받은 것인데,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한 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IT 스타트업 전문가인 최 대표는 국가경쟁력을 위한 플랫폼 스타트업의 육성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하면서 대부분이 플랫폼 형태를 많이 띤다”며 “향후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공급자 위주의 플랫폼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우리 법률산업을 지키는 방파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리걸테크 산업은 스타트업만 1500여개에 이르고 매년 13%가량 성장하고 있는 신성장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플랫폼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 대표는 과거 타다금지법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정부가 타다의 서비스를 금지한 뒤 육성을 표방했지만 결국 타다금지법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수많은 관련 스타트업들이 도산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이번 플랫폼 기업과 전문직 단체 간의 갈등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플랫폼 스타트업 육성정책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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