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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시민사회 만들어 신뢰 회복… 긴 안목으로 정책 손봐야” [공정한 나라의 계층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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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29 06:00:00 수정 : 2021-09-28 2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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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문가 좌담회

부모는 자녀들 잘 될 기대로 투자하지만
자녀 세대의 지위 더 낮아질 가능성 걱정
‘개천 용’ 단어는 청년들에게 절망감 안겨
노력에 대한 성취 못 얻는 구조에 좌절해

셰어하우스 거주자 대부분 부동산 없어
부모 여유자금 여부에 수십년 인생 좌우
하층이라고 생각 땐 위 올라갈 생각 못해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 클로즈업 필요

불평등은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힘들어
부모와 자녀세대까지 30년을 바라봐야
정치권선 4~5년짜리 단기정책만 급급
청년들에 최소한의 생활 가능하게 해야
오현주 함께주택협동조합 부이사(왼쪽), 변금선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가운데),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공정한 나라의 계층사다리’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계층사다리를 복원하려면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원 기자

한국 사회에서 ‘계층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한탄은 단순히 계층이동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사다리에 접근할 기회, 오르는 과정 모두 공정하지 않을 때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무력감을 총체적으로 뜻한다. 세계일보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두 달간 사회이동성이 가장 높은 북유럽 3개국(덴마크·핀란드·스웨덴)을 방문했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강한 시민사회와 평등 의식을 바탕으로 ‘공정 사회’를 정착시켰다. 교육·주거 등을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고, 성 평등에 가까운 사회라는 점도 특징이었다. 이는 구성원 간 격차를 줄이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보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 경제사회 전문가들은 “북유럽 모델을 한국 사회에 바로 적용하기엔 환경이 너무 다르다”면서도 “시민사회의 힘을 길러 훼손된 공적 신뢰를 복원하는 것은 필수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와 변금선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오현주 함께주택협동조합 부이사는 세계일보가 지난 14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개최한 계층 사다리 복원 기획 결산 좌담회에서 무너진 공정성 회복과 함께 너무 벌어진 계층 간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눈앞의 정치적 이해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 주거 정책 등을 손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들은 “대학 진학과 주택 문제를 계층 대물림, 재테크 수단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복지로도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좌담회 주요 내용.

―최근 관심이 높아진 계층담론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나.

△신광영 교수(이하 신 교수):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자녀들의 지위가 낮아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중산층의 자녀 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70%대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본인보다 잘 될 거라 기대하고 투자하지만 대졸자 80%는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결혼 후에도 부모와의 관계가 긴밀히 유지되기 때문에 청년 문제가 더 많이 언급되는 것도 있다.”

△변금선 위원(이하 변 위원): “지금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청년들에게 절망을 주는 말이다. 교육 수준에 따라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설득해서 아이들이 10∼20년간 공부만 한다. 이렇게 세상에 나왔더니 노력에 대한 성취를 얻을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맞닥뜨린 거다.”

△오현주 부이사(이하 오 부이사): “현재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부동산을 못 가지는 사람들이다. 30살 무렵까지의 직업, 집 소유나 코인 투자 성공 여부, 부모님의 여유자금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냐 등에 따라 앞으로 수십년 인생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교수: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고졸자, 건물주,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가, 최상층부의 재벌총수 등은 미디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을 클로즈업할 필요도 있다.”

△변 위원: “계층 사다리 이야기할 때 진짜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 생각도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산업재해 사고 뉴스는 20대가 육체노동을 하다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지 않다. 단순 사고라기보다 계층 담론적으로 볼 수 있다.”

―사회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신 교수: “불평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힘들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까지 30년을 봐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4∼5년짜리 정책에 급급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해결해야 할 ‘교육’ 문제 등이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영유아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평등한 시기다. 영어유치원, 사립학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 달에 약 100만원으로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많다. 상당한 격차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만들어지고 이것이 평생 간다.”

△변 위원: “청년이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면 여러 경험과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당장 일해야 하고 대학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취업도 스펙이 없으면 안 되는데, 공공기관 등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새로운 경험을 청년들에게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 용(龍)이 되지 않아도 누구나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오 부이사: “최근 ‘국가일자리보장제’가 논의되고 있다.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 국가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도돌이표다.”

―북유럽을 모델로 삼는 것에 대한 생각은.

△신 교수: “우리는 북유럽 모델을 받아들일 대중의식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정치를 보면 북유럽과 너무 다르다. 국회의원보다 보좌관이 정책을 더 많이 안다. 정치인들이 당장 터지는 일에 대응하기에 바빠 수십년을 내다보는,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제도를 고민하지 않는다. 북유럽의 정책이 좋아 보이지만 우리나라에 이식하기엔 아직 토양이 척박하다.”

△오 부이사: “유럽식 모델은 건강한 노동조합, 시민단체가 기반이 되었고 사회적 합의도 이뤄졌다. 우리나라와 너무 다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세팅을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북유럽의 ‘강한 시민사회’는 배울 만하다. 사람들이 선택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 교수: “시민사회가 강화되지 않으면 단기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된다. 우리 사회에 이건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북유럽은 노동조합이 강해서 정치, 정책적으로 받쳐준다. 우리는 노조 조직률이 10%대이고 비정규직은 1%도 안 된다.”

―공정 담론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변 위원: “한국 사회는 빨리 발전한 만큼 불평등이 심각하게 뿌리박혀 있다. 청년 눈높이에서 공정사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청년이 말하는 공정은 ‘취업의 공정’이다. 내가 알고 있는 A라는 룰에 대비하며 10년 동안 달려왔는데 룰이 B로 바뀌면 화가 난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공정과 다르다. 그건 구조적 평등에 대한 얘기이고, 청년들은 당장 눈앞의 공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기회가 너무 적고, 너무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건 일자리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삶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가 됐기 때문에 작은 구멍을 향해 달려가다가 못 들어가면 절망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신 교수: “어릴 때부터 교육 시스템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 불공정과 불평등은 왜 정의롭지 못한지 등을 공부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서 ‘정의’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것이 쌓인다면 부당한 사회 제도나 관행이 해소될 여지도 높아질 것이다.”

△오 부이사: “우리 사회의 공정성이 무너진 것은 너무 잘 아는 얘기다. 배반당한 신뢰는 쉽게 회복할 수 없다. 아주 작은 것부터 돌려놓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했는데 ‘기회는 공정하고 과정은 정의롭고 결과는 평등하게’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젠더 문제와 계층이동의 관련성은 어떻게 보나.

△신 교수: “여성의 고등교육 진학률, 성취 등이 남성을 능가하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여성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서구에서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 제약돼 있던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풀리면서 나타난 변화다.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리더십이 강한 기업문화라 여성이 불이익을 많이 당한다. 여성 입장에선 차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젠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변 위원: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인기다. 남성들의 분노를 보면 군대 안에서의 불공정 등 말이 안 되는 시스템에 기인한 게 크다. 그런 상황들을 다 견디라고 국가가 억압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남성들은 스펙이 없으면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있다.”

△신 교수: “북유럽의 경우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적고, 정당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힘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 곳일수록 오히려 성 평등 이야기를 공격적으로 한다. 젠더 불평등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한국은 과도기다. 우리는 보수 정당에선 아직 성평등 인식이 취약한 데다 몇몇 정치인에 의해 ‘백래시’(반발 작용)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젠더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정치적 쟁점으로만 부각되는 이상한 상황이다.”

―계층 간 격차 줄이기 부동산 정책이 있을까.

△오 부이사: ‘“사회주택’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사회주택이 들어선 지역의 집값에 대해 의미 있는 실험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에 대한 선택지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 생애주기에 맞게 집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선택지가 없다. 현재 우리의 사회주택은 하층 계급 위주의 정책이다. 네덜란드, 싱가포르는 중간소득그룹까지 포괄하는 임대주택을 운영한다.”

△변 위원: “지역 격차도 너무 크다.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 대학 지원 등을 했지만 결국 청년들은 취업할 때 수도권으로 올라간다. 온갖 교육 및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 있어서다. 서울에는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며 한 평짜리 원룸에서 사는 지역 출신 청년이 많다.”

△신 교수: “공공주택 비중이 약 8%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주택 공급에 대해 복지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재테크 수단으로만 인식한다. 정부는 경기를 부흥시키는 하나의 산업으로, 기업은 돈 벌기 쉬운 사업영역으로 건설업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공적인 방식으로 개입해서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을 복지로 책임진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정지혜, 안승진, 배소영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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