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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출간 책도 북튜버 소개에 베스트셀러로 ‘역주행’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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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02 20:00:00 수정 : 2021-10-02 11: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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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도 ‘유튜브 전성시대’

구독자 140만 보유 ‘김미경TV’ 등
입김 닿으면 판매량 50배 폭등도
저술까지 뛰어들며 시장 ‘쥐락펴락’

출판사, 유튜버에도 신간 보도자료
광고보다 홍보 효과 커 전략 고민

“좋은 책 소개하는 순기능 있지만
과도한 상업화·쏠림 현상 개선을”

‘이게 뭐지?’ 올해 초인 1월15일, 평소처럼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던 한 중견 출판사 박서영(가명) 부장은 교보문고의 1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종합순위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미 석 달 전에 출간됐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마우로 기옌 교수의 책 ‘2030 축의 전환’(리더스북)의 순위가 급상승해 무려 종합 순위 10위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초이니까 글로벌 경제전망이나 전략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이건 갑작스럽게 순위가 오른 게 아닌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여기저기 수소문해본 결과, 책은 구독자가 무려 140만명에 이르는 인기 유튜브 채널 ‘MKTV 김미경TV’에 소개된 직후부터 판매가 급증해 베스트셀러 순위가 무려 140계단이나 상승한 것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도 유튜브 이용과 활용이 보편화하면서 유튜브의 출판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책 판매가 출렁거리고, 일부 유명 유튜버는 직접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출판 시장에서도 ‘유튜브 전성시대’가 만개하고 있다.

출판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튜브가 새로운 출판 생태계가 되고 있다며 순기능에 주목하면서도 과도한 상업화나 특정 분야 편중 현상 등의 우려와 부작용에 대해선 점검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튜버셀러’, 책판매 “쥐락펴락”… 오래된 책도 베스트셀러로

국내 출판계에서 몇 해 전부터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는 ‘유튜버셀러’였다. 유튜버셀러란 ‘유튜버가 만든 베스트셀러’의 줄임말로, 책을 소재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른바 ‘북튜버’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들이 소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많은 구독자로 큰 인기를 끄는 ‘MKTV 김미경TV’나 구독자가 13만명 정도인 ‘신박사TV’ 등은 출판계를 뒤흔드는 대표적인 유튜브 채널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 책이 소개되면 판매량이 50배나 뛰기도 한다.

심지어 십여년 전 출간된 책도 유튜버에 소개된 뒤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2년 전인 2019년 구독자가 16만 명인 유튜버 ‘라이프 해커 자청’은 영상 ‘오타쿠 흙수저의 인생을 연봉 10억으로 바꿔준 5권의 심리학 책’에서 “인생은 의사결정의 총합이며 일상의 의사결정에서 ‘클루지(심리적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며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갤리온)를 추천했다. 책은 이미 2008년 출간됐지만, 자청의 유튜브 영상이 공개된 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역주행을 했다. ‘라이프해커 자청’은 지난해 유튜브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저술에 직접 뛰어든 유튜버들… “나도 이젠 작가”

요즘에는 아예 많은 유튜버들이 출판사와 손을 잡고 직접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다. 주로 재테크나 처세, 인생의 전략, 에세이 등을 중심으로 영상 콘텐츠의 내용을 정리한 경우도 있고, 아예 새롭게 쓴 뒤 유튜브에 다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교보문고의 9월 4주차 베스트셀러 차트에 따르면 인기 유튜버 신영준과 주언규씨가 쓴 책 ‘인생은 실전이다’(상상스퀘어)는 3주 연속 3위를 지켰다. 멋쟁이 유튜버 ‘밀라논나’로 활동하는 장명숙씨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도 지난주 8위에서 7위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 구독자가 90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브 채널 ‘김작가TV’를 운영하는 김도윤씨가 펴낸 ‘럭키’(북로망스)는 이번 주 4계단을 뛰어올라 10위권에 진입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나 ‘집콕’의 영향으로 유튜버들의 출판 시장 진출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코미디 크리에이터를 표방하며 구독자 223만명을 자랑하는 유튜버 ‘흔한남매’는 학습만화인 ‘흔한남매’(아이세움) 시리즈를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려놨다. 흔한남매 시리즈는 현재 8권까지 나왔는데, 출간과 함께 모두 베스트셀러 최상위에 오르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출판사 역시 인기 유튜버의 책을 낼 경우 팬덤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판매와 기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 때문에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략 유튜브 구독자 수의 1~5% 안팎이 해당 유튜버가 쓴 책을 사주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주로 인사나 호기심 차원에서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처럼 책을 보지 않는 시대에 이 정도 독자층을 갖고 있다면 출판사로서도 외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튜브 전성시대에 출판사들도 너도나도 “유튜브 전략 고민”

유튜브라는 미디어가 책의 생산과 유통, 판매의 주요한 축으로 부상한 이유는 미디어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 젊은 세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영상 미디어에 익숙해진 데다 글자 대신 영상을 통한 책 소개가 의외로 호소력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출판사들은 이제 신간이 나오면 신문 및 방송사뿐 아니라 유명 유튜버나 블로거 등에게 책과 보도자료 등을 보내는 건 기본이 됐다. 유튜브가 대형 서점의 유료 매대나 인터넷 서점 광고보다 판매와 유통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서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몇 해 전부터 책의 판매와 유통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신문과 방송 이외에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신간을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인기 유튜버들에게 책과 보도자료를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신간 특성에 맞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출판사는 아예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기도 한다. 창비는 2018년 10월부터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주로 신간 저자들이 직접 출연해 책 소개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거나 기자간담회 등을 압축해 올리는 식이다. 문학동네도 2013년 시작한 공식 채널 외에도 2019년부터 유튜브 채널 ‘출근한 문동씨’를, 민음사 역시 2019년 ‘민음사티브이’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전문가들, “새로운 채널 순기능 살리고, 상업화나 쏠림 현상 극복해야”

다만, 출판 업계 일각에서는 유튜브 시대의 여러 우려나 부작용도 우려한다. 출판사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 있는 데다 또 다른 비용 지출처가 될 수 있어서다. 국내 출판시장이 유튜브라는 외풍에 과도하게 흔들리는 건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통 국내 대형 서점에선 평균적으로 주간 판매 2000여권 안팎이면 1위에 오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수십만명의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유명 유튜버들의 경우 구독자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만 구매해주면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일부 유튜버의 경우 노골적으로 책을 광고 또는 홍보하는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대생 김모(23)씨는 “친구 가운데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고 책을 사서 읽는 경우도 있지만, 저의 경우 노골적으로 책을 홍보 광고하는 듯한 유튜버도 많아 이제 거의 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책을 소개하는 새로운 채널로서 유튜브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상업화나 특정 분야의 과도한 쏠림 현상 등에 대한 고민도 이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국내 출판사들도 이제 기획 단계부터 유튜브 전략을 고민하는 등 유튜브가 책 유통 판매의 주요한 채널이 되는 시대가 됐다”며 “유튜브의 순기능과 함께 과도하게 상업화하거나 좋은 책들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일부 특정 분야만 과도하게 쏠리는 등의 역기능도 잘 살펴서 대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은 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쳐나는 시대여서 좀더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유튜브와 유튜버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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