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일보의 ‘총장 장모 대응 문건’ 보도가 나가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내에서 “정치 공작”이란 반응이 나왔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문건에는 윤 후보의 장모인 최모씨가 연루된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일부 내용은 검찰 관계자가 검찰 내부망을 조회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사실들이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최씨를 ‘피해자’로 기재하고 최씨와 법적 다툼을 벌이던 인사들의 범죄 목록을 나열했다. 누가 봐도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를 변호하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검찰은 부동산 사기 사건으로 고발된 최씨를 조사 중이었는데 윤 총장의 직접 관할 기관인 대검이 그런 문건을 만든 행위는 적절치 못했다. 당시는 윤 총장이 스스로 본인과 본인 주변 인사에 대한 수사는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시점이었다.
민간인인 최씨의 개인 송사에 대해 대검이 왜 문건을 만들어가며 대응을 했는가. 윤 후보 측은 “윤 후보가 총장 시절 해당 문건을 보고받은 사실도 없고, 작성 경위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총장을 위해 대검 참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인가.

본지 보도는 이런 상식적 차원의 문제 제기였다. 윤 후보가 대선에 뛰어들지 않았다고 해도 해당 문건의 생산 주체와 생산 이유, 윤 총장의 지시 여부 등은 검증돼야 할 사안이다. 더욱이 윤 후보가 야권 내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대선 주자가 된 마당에서는 검증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장차 최고 국정책임자가 될 대선 후보라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검증의 무대에선 여도 없고 야도 없다.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다. 대선 후보는 오직 국민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성실히 소명해야 할 무한 책임이 있다.
그런데 윤 후보 측에선 다짜고짜 “국민의힘 대선후보 1차 컷오프를 앞둔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 정치공작이라면 특정 정파의 사주를 받아서 보도를 했다는 의미일 텐데 그 어떤 정파와도 무관하게 팩트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보도한 기자 입장에선 무슨 소리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떤 의혹이든 ‘공작’으로 몰아붙이는 정치권의 구태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그런 대응은 실체적 진실 규명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정치 혐오만을 부추기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정부의 청와대는 본지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사건’을 ‘문건유출 사건’으로 몰아갔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 겸손한 자세로 그 문건에 담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고 ‘국정 농단’의 암세포를 도려냈다면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지도 모른다. ‘정치 공작’이라고 말한 윤 후보 측의 인사는 이 점을 숙고해보고 무엇이 윤 후보를 위하는 길인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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