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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체제경쟁 땐 통일 어려워… 공생의 길서 답 찾아야 [신통일한국을 위한 싱크탱크 2022 희망전진대회]

관련이슈 THINK TANK(싱크탱크) 2022 , 참사랑

입력 : 2021-09-12 19:22:15 수정 : 2021-09-12 19: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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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 정책연구원 소장 기고

신통일한국론은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 얽혀있어
자유·평등 넘어 사랑으로 접근해야 남북통일 이뤄
무기 발전으로 강대국들 패권 경쟁… 평화 보장 안돼
인류가 가정·여성중심 접근할 때 평화도 비로소 열려
한민족 힘 합쳐 역량 키워야 남북통일 달성할 수 있어
박정진 정책연구원 소장

오늘날, 왜 ‘신(神)통일한국론’인가? 오늘날 신(神)의 문제는 개인의 추락한 영성, 국가와 세계의 갈등과 전쟁, 환경문제 등 인간과 자연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문제이다. 신통일한국론은 배타적인 국가를 형성한 인간이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고 자연과 공생할 것인가의 문제로까지 소급된다.

현대인은 자연과학에 힘입어 기술능력을 배가하고부터 신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신의 문제가 인간의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인간의 속성에 신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제가 신통일한국론으로 개념정립되는 까닭은 한국의 통일과 세계평화의 문제가 절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신통일한국이 내재한 다원다층의 의미를 몇 단계로 나누어 풀어보자.

 

한민족의 완성은 남북통일국가

근대와 근대성을 규정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자연과학(뉴턴역학)의 발달과 함께 이에 맞는 인간의 삶을 위해 도덕과 철학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문화 풍토에 맞는 근대국가를 완성하는 데 있다. 근대의 완성은 근대국가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남북한)는 아직 근대국가를 완성하였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남북한은 서양이 제공한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한 냉전체제, 즉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의 틀을 깨고 우리 스스로 민족통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왜 통일국가를 만들지 못하였는가. 남북한의 엄연한 현실을 보면 북한은 핵을 마지막 생존의 무기로 장착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있으며, 남한은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를 은근히 자랑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과연 통일로 향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12일 경기도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열린 ‘THINK TANK(싱크탱크) 2022 희망전진대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학자 총재가 THINK TANK 2022 아시아 태평양사무국 출범을 알리며 타징하고 있다. 가정연합 제공

이에 우리는 남한의 산업화와 경제력을 동원하고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북한을 개발하는, 통일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묘안(妙案)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남북한이 연출하는 최악의 모습은 ‘국가 없는 국민(남한)’과 ‘국민 없는 국가(북한)’이다.

근대가 마련한 자유주의(자유)와 사회주의(평등)로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지막 근대의 정신인 박애(사랑)로 통일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면서 공생을 달성하는 길밖에 없다. 이제 남북한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할 일만 남았다. 종래처럼 체제경쟁과 저주로 일관한다면 통일은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한 사회나 국가는 문화능력이, 문력(文力)과 무력(武力)이 다 갖추어졌을 때에 존립 가능한 것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룰 때는 한·중·일에서는 불교가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었고, 원효의 ‘화쟁(和諍)사상’과 의상의 ‘화엄(華嚴)사상’은 통일을 이루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유신(唯神)과 무신(無神), 좌우대립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남북통일을 향한 회통불교적인 전통을 잇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기술-모방사회’의 한계


오늘날 3만 달러 시대를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혼란을 보면 해방공간이나 한국전쟁의 상황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한국정치 및 이데올로기의 난맥상을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평행선의 끝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지난 과반세기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실현한 것으로 자체 평가해왔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통일된 합의가 있었던 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 각 정부들은 과거정권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단절적 자세를 취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는 알게 모르게 국민을 분열시키는 작용을 했으며, 이러한 현상자체가 분열과 당파의 소산이기도 하다.

해방 후 한민족은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실험장이 되었다. 사대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중국사대에서 미국사대로 옮겨갔고, 식민주의자들은 아직도 식민체질을 벗어나지 못했고, 독립운동세력의 상당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사대-식민-마르크스주의 그 어디에도 주인정신과 주체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술사회와 예술사회의 갈림길에서


한국을 문화적으로 말할 때 흔히 ‘기술사회-연줄사회’라는 말을 한다. 이는 개인과 자유를 기초로 근대국가를 출범시켰지만 아직도 선진기술모방과 연줄공동체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근대국가의 국가철학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남이 먼저 간 길을 뒤따라가는 것으로는 역사를 새롭게 개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문화에 창조적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풍류도는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키워드이다. 풍류라는 말은 동아시아 사회가 공유했던 개념이기는 하지만 풍류의 성격이 한·중·일이 다르다는 점을 최치원은 ‘난랑비서문’에서 밝혀놓고 있다. 유불선을 포함하는 삼묘지도(三妙之道), 선사(仙史)의 전통이 그것이다. 오늘날도 이러한 전통의 계승이 필요하다.

한국의 풍류도는 예술에 초점을 두고 있다. 흔히 종교가 본질에 속하고 예술은 현상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예술이 본질에 속하고 종교는 현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조상들은 ‘멋진 삶’과 ‘큰 삶’에 삶의 목적을 두었다. 멋진 삶, 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필요하다. 예술사회란 철학과 윤리학, 미학을 고루 갖춘 사회를 말한다. 지금 한국은 기술사회과 예술사회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다.

동양평화론을 세계평화론으로 완성해야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플라톤 이후의 최고철학자가 된 까닭은 근대의 자연과학시대에 맞는 도덕철학을 수립한 데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만년에 인류평화를 위해 오늘날 국제연합창설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영구평화론’(1795년)을 집필한 데에 있다.

한편 안중근의 ‘동양평화론’(1910년)은 동양평화를 모색한 유언과 같은 에세이로 사형선고를 받고 뤼순(旅順) 감옥에서 항소를 포기한 채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쓴 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은 집필시간을 주겠다던 일제의 당초 약속위반으로 전체구성만 해놓고 ‘서문’만 쓴 채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다. 우리는 미완성인 동양평화론을 세계평화론으로 완성해야 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 영역과 세계관의 차이를 보이지만 자신이 처한 세계적 안목에서 평화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가와 기술의 연대는 세계를 패권경쟁 혹은 제국주의의 역사로 만든 지 오래다. 특히 전쟁무기의 가공할 발전은 더욱 더 강대국들을 패권경쟁으로 몰아넣고, 저마다 자신이 지배하면 세계가 평화를 이루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팍스(PAX=peace)의 의미이다. 팍스아메리카, 팍스시니카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강대국의 평화논리로는 항구적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유엔은 아직도 강대국의 논리의 각축장이다. 단지 강대국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함께 모여 국제적인 분쟁을 토의할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말인가. 전쟁과 평화는 국가와 세계의 문제로 비약한다.

신통일한국론, 남북통일세계평화론, 신(神)의 여성성


전쟁은 가부장-국가사회의 논리고, 남성중심사회의 논리이다. 전쟁은 바로 문명과 무기체계의 발달의 결과이다. 만약 인류가 가정-여성중심의 논리를 펼친다면 평화의 달성이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면 평화는 자연친화적으로, 자연중심으로 인간의 삶의 태도를 바꾼다면 얼마든지 평화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가부장-국가사회-남성중심-전쟁’은 ‘신의 남성성’과 관련되고, ‘가정-마을사회(지구촌)-여성중심-평화’는 ‘신의 여성성’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후자, 즉 신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절대타자로서의 신’보다는 나의 신체와 함께 있는 ‘내재성의 신’에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평화가 한국의 남북통일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관점은 매우 유익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신빙성이 높다. 한반도의 한민족은 고대와 중세에도 항상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한 경우가 드문 민족이고 국가이다. 말하자면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국가였다.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지평을 넓혀서 다시 세계평화론, 즉 ‘남북통일세계평화론’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통일문제는 한민족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문제라는 데에 그 복합성이 있다. 평화적인 남북통일과 함께 그것이 세계평화를 이루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민족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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