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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포렌식 기법’ 접근성 높일 것”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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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3 02:00:00 수정 : 2021-09-12 2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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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포렌식학회 김영대 회장

삭제된 정보 대부분 복구 가능해
수사 내내 필수인 디지털 포렌식
자율주행·AI 등 활용 증가 전망

긴 시간 수작업 탓 전문가만 사용
쉽게 사용 가능한 툴 개발 등 노력
김영대 한국포렌식학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클라스 사무실에서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늦은 밤 침대에 눕기까지 현대인은 디지털 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휴대폰으로 지인들과 연락하고,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조그마한 메모도 디지털 기기로 하는 게 더 익숙한 시대다. 한 개인의 모든 것이 디지털 기기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이 높아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수사기법이 있다. 각종 디지털 기기에 남아 있는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디지털 포렌식’이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클라스 사무실에서 김영대(58·사법연수원 22기) 한국포렌식학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21세기엔 사실상 모든 증거가 디지털 증거”라며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등이 삶에 스며들면 디지털 포렌식의 활용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날 때까지 김 회장은 ‘과학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디지털 포렌식을 활용하면 사용자가 삭제한 정보를 복구할 수 있다. 삭제된 모든 정보를 복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삭제된 데이터가 또 다른 데이터로 덮이지 않았다면 대부분 복구 가능하다. 김 회장은 “요즘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나갈 때 반드시 디지털 수사관도 동행한다”며 “PC, 휴대폰, 회사 서버 등은 모두 디지털 수사관이 열어보고 자료를 추출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사의 처음과 끝에 디지털 수사관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디지털 포렌식 기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까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지휘하며 대법원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대한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낸 허익범(62·〃 13기) 전 특검은 지난 7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2급 자격증을 땄다. 한국포렌식학회에서 실시하는 해당 시험은 국내 유일의 디지털 포렌식 관련 공인 자격증이다. 허 전 특검은 200여명의 필기 지원자 중 1등으로 필기를 통과했다. 김 회장은 “허 전 특검이 1등으로 필기를 합격했다고 해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희팔 사건’ 수사에도 디지털 포렌식의 도움이 컸다. 이 사건을 맡았던 대구지검은 2016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조희팔 등이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약 2년5개월 동안 피해자 7만여명을 상대로 5조715억원의 금융다단계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는데, 전체 거래액을 특정하는 데 포렌식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당시 검찰은 다단계 피해자들의 정보가 담긴 컴퓨터를 확보했지만, 삭제된 데이터에 또 다른 데이터가 ‘덮어쓰기’된 바람에 데이터를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대검 디지털수사과 데이터베이스팀에서 덮어쓰기된 삭제 파일을 복구하는 특허 기술을 발명했고, 이 기술을 활용해 5조원 규모를 특정했다.

 

김 회장은 “당시 전체 거래규모가 5조715억원이라는 걸 특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디지털 포렌식”이라며 “그 전까지는 기소를 하면서도 2조5000억원, 2조7000억원 등으로 전체 거래규모를 적었는데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2조원 이상의 숨어있던 거래액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은 최신 수사기법이지만, 긴 시간의 수작업이 필요한 고난도 노동이기도 하다. 키워드 검색을 통해 관련 파일을 찾아내는 건 컴퓨터지만 결국 수사관들이 검색을 통해 추출된 수만, 수십만개의 파일을 모두 열어봐야 한다. 어디에 어떤 증거가 들어있을지 몰라서다.

 

김 회장은 “디지털 파일을 분석해 증거까지 찾아내는 과정이 굉장히 길다”며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모든 파일을 다 열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진 파일의 경우엔 사진 속 배경이 어딘지까지 확인할 정도로 꼼꼼히 파일을 본다”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디지털 포렌식 기법이 좀 더 보편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사의 핵심 기법이 됐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의미다.

 

“디지털 포렌식 기법은 많이 쓰이면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거든요. 학회장으로 있는 동안 디지털 포렌식을 좀 더 일반화하려 합니다.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좀 더 간편한 도구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디지털 포렌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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