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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티는 건…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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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2 09:00:00 수정 : 2021-09-12 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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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지지 않는… 코로나 중증환자 병동 간호사 동행기
강태훈 간호사가 새벽녘 코로나19 전담병동 내 음압병실에서 간호기록을 입력하고 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2020년 1월20일) 이후 600일이 지났다. 언제쯤 끝난다는 기약도 없는 이 역병의 시간은 우리네 일상이 됐다. 매일 새롭게 발표되는 확진자, 사망자 수는 초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지만, 그 숫자가 주는 현실 감각은 오히려 무뎌졌다. 지극히 일상화된 방역의 일선에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있다. 지난 3일 정오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약 20시간에 걸쳐 코로나19 중증환자 병동 간호사들과 동행했다. 그들이 지탱해온 일상의 이면을 기록했다.

“띠띠- 삐이- 띠띠 삐삐-”

80대 여성 환자 1명이 투병 끝에 사망해 관에 실려 중환자실을 나가고 있다.
나란히 누워 있던 중증 환자 중 한명이 사망해 병실을 떠나면서 병상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병실과 병실 사이를 옮겨 다니는 사이 벽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다.

병동엔 정적이 드물었다. 대낮부터 깊은 새벽까지 환자들의 상태 변화를 알리는 경고음이 그치지 않았다. 우주복 형상을 한 ‘레벨D’ 전신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은 그때그때 이 소리에 반응해 분주히 이동했다. 아주 간혹 적막이 흐를 때면 안도감을 느꼈다. 대개 인공호흡기 삽관까지 갈 가능성이 있는 중증 환자들이 이곳에 온다. 일반적으로 중환자실 환자들은 ‘내가 여기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살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반면 코로나19 전담 병동 환자들은 두려움이 많다. 바로 옆 침대에서 멀쩡히 대화를 나누던 환자가 하루아침에 상태가 나빠지고 목숨을 잃는 걸 목격하고 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의식이 없던 환자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돌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호사들은 ‘내가 며칠 더 있으면 저렇게 나빠지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이날도 80대 여성 환자 1명이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16일 만에 주검이 돼 관에 실려 나갔다. 빈 병상은 곧 또 다른 환자로 채워졌다. 중환자실에선 일상적인 일이다.

조은정 수간호사가 저녁 근무 중 음압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조 간호사는 “내가 환자들에게 감염되는 것은 두렵지 않다”면서 “환자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하는 게 두려워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확진 환자가 상태 악화로 인해 중환자 병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병동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3교대로 돌아가며 환자들과 24시간을 함께 했다. 4인이 1팀으로 움직이는데, 1명이 전체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총괄하고 나머지 3명이 중증환자 15명을 돌본다. 1인당 4~5명의 중환자를 맡는 셈이다. 쉴 틈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전신방호복을 입은 채로 끼니도 거르고 내리 대여섯 시간을 일하는 날도 종종 있다. 방호구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눈가로 흐르는 땀을 닦을 수 없다. 상당수는 안구질환을 앓고 있고, 만성적 피로감에 노출돼 있다. 연차휴가를 가본 적 있느냐는 질문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제방을 쌓고 또 쌓아도 물이 계속 새어 들어오는 기분이다. 코로나 환자들의 상태는 악화되는 건 빠르지만, 좋아지는 건 드물면서도 느리다. 일반 중환자들과 비교하면 서너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도 급급하다. 꿋꿋하게 버티는 건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찌 우리가 환자를 버리겠는가. 중환자실 간호사는 ‘환자와 같이 죽는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우리는 환자 옆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피곤해 보이는 동료의 얼굴을 보면 너무 미안하고 힘이 든다.”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남양주 현대병원 호흡관리 중환자실 조은정 수간호사의 전언이다.

남양주 현대병원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으로 전환한 이후 지역사회에서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병실이 있던 자리에 음압병실을 설치하고 인공호흡기, 이동형 X-RAY기, 이동형 초음파, 각종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비하는 등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 재난 상황에서 지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음에도, 공적 지원이 닿지 않는 현장 인력들의 노동은 쉽사리 소외되고 있다.

지난 2일 막다른 자리로 내몰린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공공의료체계의 개선을 촉구하며 총파업 목전까지 갔다. 새벽까지 이어진 협의 끝에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이어지는 엄중한 상황을 인식해 파업 자제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 보건의료노조 요구와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현장 실무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간호사 A씨는 “정부에서 약속한 정책들이 지역 중소병원까지 도달해 적용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때까지 우리가 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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