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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서 ‘사람제물 인골’ 또 나왔다

입력 : 2021-09-08 06:00:00 수정 : 2021-09-07 21: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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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세기 중엽 ‘인신공희’ 확인
4년 전 남녀 2구 발굴지점 50㎝ 옆
20대 전후 신장 왜소한 여성 추정
영양상태 좋지않고 비싼 유물 없어
지난 7월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성인 여성 인골. 목걸이(경식)와 팔찌를 하고 있었고 4세기 중엽 인신공희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사람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낸 의식)의 흔적으로 보이는 인골(사람뼈)이 또다시 나왔다. 2017년 국내 최초의 인신공희 사례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50대 남녀 인골 2구 발견 지점으로부터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월성 서성벽 문지(門址·문터) 주변 발굴조사를 통해 4세기 중엽에 묻힌 것으로 보이는 신장 135㎝ 전후의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사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대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는 인골은 얕은 구덩이를 판 뒤 안치했으며, 위에는 풀과 나무판자를 덮었다. 2017년에는 신장 165.9㎝인 남성 인골, 153.6㎝인 여성 인골이 확인된 바 있다. 연구소는 인골 3구가 치아와 골격을 보면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고급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신분이 낮은 인물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연구소 박성진 연구관은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에 묻었다”며 “성벽이 튼튼하게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성벽의 중요한 시설인 대문 근처에서 의식을 치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대 신희권 교수는 “서쪽 문이 있던 곳에서 인골이 많이 나온 만큼 신라인에게 서쪽이 가지는 의미나 이 지점과 가까운 외부 지역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1985년, 1990년에 이 지점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서 인골 20여 구가 나온 적도 있다. 축성 과정에서 묻힌 것은 분명하지만 출토 정황이 분명치 않아 인신공희의 흔적인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연구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월성의 축조시점이 101년(파사왕 22년)으로 기록돼 있으나 출토유물 연대분석 등을 통해 이보다 250년 정도 늦은 4세기 중엽∼5세기 초반에 만들어졌음을 확인한 것도 성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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