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의 고통만큼 죗값 받아야
항소심 감형 안 돼” 시민들 호소
美·日 등 해외서도 진정서 날아와
1심 5년 양부, 공범 적용 촉구도
“法 효력 없지만 양형 참고 가능성”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정선에 사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중략) 죽은 아이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아기의 죽음을 제발 가볍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정인이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42세 김성현씨)
“저희 아이가 딱 고만한 또래라 저희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정인이의 외로움과 고통만큼 피고인들이 죗값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묻히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40세 장민희씨)

최근 서울고등법원에 접수된 진정서 중 일부다.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 생후 16개월에 세상을 뜬 ‘정인이’ 사건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1심에서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은 피의자들이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한 가운데 최근 3개월간 이들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진정서가 1만통 넘게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성수제)에 접수된 정인이 양부모 항소심 관련 엄벌 진정서는 총 1만67통이다. 지난 6월3일 서울고법이 진정서 집계를 시작한 후 3개월 만에 1만통이 넘은 것이다. 협회에 따르면 전국 각지뿐 아니라 일본,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진정서가 쏟아지고 있다. 앞서 1심 재판이 열렸던 서울남부지법에도 수만건의 진정서가 도착한 바 있다.
지난 5월 1심에서 정인이 양모는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 양부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양부모와 검찰 모두 항소한 상태다. 항소심 첫 공판은 오는 15일 열린다. 진정서를 보내는 이들은 항소심에서 양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을 내려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양부에게도 살인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해 공소장을 변경해달라는 목소리도 높다.
진정서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인이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 이들이다. 협회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을 접하고 가슴 아파했던 평범한 엄마들이 진정서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협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진정서 인증 글을 보면 대부분의 진정서는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란 글로 시작한다. 정인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진정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두돌 된 아이를 키우는 이혜리(30)씨도 매일 시간을 쪼개 진정서를 쓴다. 그는 1심 재판부에 약 130통, 2심 재판부에 90통의 진정서를 보냈다. 그는 이날도 진정서에 “정인이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였습니다. 부디 재판장님께서 이들의 죄를 정의로운 판결로 심판해주세요”라고 썼다. 이런 그의 노력을 소용없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는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정인이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우리 아이도 16개월이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학대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고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재판부에 알리고, 피의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이 내려지는데 단 1%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진정서에는 정인이 사건을 보며 느낀 아픔과 참담함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명호씨는 진정서에 “정인이를 알게 되고 진정서라는 것도 처음 써봤고 판결문이라는 것도 처음 읽어봤다”며 “(사건을 보며) 통곡을 했다. 잠든 순간에도 불안했을 아기가 너무 가여워 편한 잠을 자는 게 죄스럽다. 가엾은 아기를 외면하면 제2, 제3의 정인이가 계속 생길 것”이라고 호소했다.
진정서에 자신을 “작년 딸아이를 출산한 초보엄마”라고 소개한 정모씨는 “초보엄마라 아기들을 먹이고 재우며 이렇게 펜을 잡기가 참으로 어려웠지만 좀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고자 진정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썼다. 이어 “일면식도 없는 아이(정인이) 이름이 사실 저는 너무 버겁고 고통스럽다”며 “살인자 부부가 죄값을 치르게 해주십시오. 아동학대범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고통스럽게 엄벌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이 사회가 알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란 문장으로 진정서를 마무리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진정서는 민원성 서류로 법적인 효력이 없어 법리 해석이나 유무죄 여부 등 재판부의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진정서가 양형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한 변호사는 “판결문에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점’이 양형 이유로 등장하기도 하는 만큼 양형에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도 재판부가 사회적 파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진정서가 1만건을 넘겼다는 것이 알려진 것도 평범한 아이 엄마였던 오모씨가 매일 법원 사이트에서 접수된 진정서를 집계한 덕분이었다. 오씨는 “유족이 없는 정인이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며 “진정서 작성을 독려하기 위해 매일 집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 엄벌이 이뤄져야만 학대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많은 이들이 정인이의 죽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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