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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서 한국전쟁까지 요인·민초들의 감춰진 이야기 담겨

입력 : 2021-08-28 02:00:00 수정 : 2021-08-27 2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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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곤/맥스미디어/3만5000원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김택곤/맥스미디어/3만5000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5년 7월, 미국 워싱턴 교외의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저널리스트 김택곤씨가 희뿌옇게 탈색된 자료들을 바삐 넘기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자료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던 그의 손이 유달리 색 바랜 미군 서류뭉치에서 멈췄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했지만 부역 의심을 받은 하와이 이민 한국인 2세 미군 병사 에녹 리의 수사기록이었다. 높고 빈틈없는 장벽에 가로막힌 채 출구를 찾아서 처절하게 헤맨 한 젊은이의 두려움과 한숨, 메아리 없는 어떤 저항이 담긴.

“나, 에녹 리 일병은 한국전쟁 당시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미국에 대한 나의 충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이민 한국인 2세로 태어난 에녹 리는 1950년 6월 하와이에서 육군에 입대한 뒤 11월15일 한반도 원산에 상륙해 미 육군 제3사단 15연대 1대대의 소총수로 복무했다. 그는 11월28일 척후부대에 차출됐다가 피습해 온 북한군 게릴라에 붙잡혔고, 이후 그들과 함께 남으로 행군하다가 미 공군기의 기총사격을 받는 사이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척후부대로 투입된 부대원 153명 가운데 5명만이 생환하고 148명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가 유일하게 붙잡혔다가 돌아온 게 화근이었다. 부역을 의심한 미군 당국의 조사는 집요하게 이어졌고, 그는 계속해 혐의를 부인해야 했다.

“나는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어떠한 행동이나 방법으로 적에게 협력한 사실이 없습니다. 수많은 신문을 받는 가운데서도 아군이나 아군부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없습니다. 적들은 내게 그에 관한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그곳에 막 도착한 신참 병사였기 때문에, 진실로 말하건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키 156㎝에 검은 머리의 에녹 리는 1963년 5월까지 무려 25차례에 걸친 신문과 한 차례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친 뒤에야 어두운 절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963년 11월 그와 관련된 수사 자료는 미 육군기록관리실에 이관됐고, 그날로 비밀취급인가가 내려졌다. 계속 복무 중이던 에녹 리는 1969년 3월 무단이탈 혐의 등으로 특별군법회의에 회부돼 유죄 판결을 받고 이등병으로 전역했다. 그의 나이 38세. 1988년 57세의 나이로 호놀룰루에 있는 태평양국립묘지에 묻혔다.

미국의소리(VOA) 기자와 MBC 워싱턴특파원 출신의 저자가 20여년에 걸쳐 모은 자료 가운데 에녹 리에 대한 수사기록을 포함해 비밀자료 약 300여건을 추려 책에 담았다. 책에는 이승만과 조봉암 등에 대한 정보,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의 보고, 박헌영의 결혼을 둘러싼 자료 등 현대사 주요 인물과 관련한 자료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수레에 깔린 수많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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