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핀테크 기업들 성장 큰 위협 작용
신한銀 ‘디지로그 브랜치’ 서소문점 개점
새로운 기술·서비스 등 테스트베드 임무
국민銀, 초기 단계 ‘AI 행원’ 기능 강화 박차
우리銀 ‘AI 상담봇 도입·챗봇 고도화’ 주력
하나銀, 은행 앱에서 관계사 서비스 제공
마이데이터 서비스, 체질 개선 기폭제로
업계 “결국 생태계·플랫폼 차원 생존경쟁”

25일 찾은 서울 중구의 신한은행 디지로그 브랜치 서소문지점 앞에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유리벽을 통해 안을 둘러보며 지나가는 행인도 있었다.
지난달 문을 연 이곳에서는 신한은행이 한창 진행 중인 ‘디지털 전환’ 기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내부 배치는 전통적인 은행 지점과는 거리가 멀다. 지점 내 중앙의 CX(고객경험)존은 거대한 원형 테이블과 소파 등 고객이 휴식공간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으로 배치가 이뤄졌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적인 측면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상담업무는 100% 예약제로 이뤄지며, 단순업무 또한 컨시어지 데스크(고객안내)의 안내에 따라 셀프뱅킹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본격적인 업무는 화상상담을 비롯한 다양한 기능을 갖춘 디지털 데스크에서 처리할 수 있다. 신분증 및 인감 등의 스캐너가 있고, 향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는 손바닥 정맥 스캔 기능도 추가돼 상담과 일반 업무는 물론 신용대출 신청까지도 문제없다.
신한은행은 그간 금융통합 앱 ‘신한 쏠(SOL)’을 통해 금융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 왔다. 예·적금 등 상품가입과 같은 다수의 업무가 모바일 앱을 통해 가능해졌고,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쇄물 또한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디지로그 브랜치는 ‘디지털아날로그’의 합성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신한은행이 향후 도입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테스트 베드로서의 임무와 이에 대한 경험을 고객에게 충분히 제공하기 위한 임무를 모두 수행한다. 현재 서소문지점에는 10명 남짓한 직원들이 투입돼 있고, 이르면 다음달쯤 인공지능(AI) 행원이 합류할 전망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뱅킹이나 모바일 앱은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짙었지만, 코로나19를 거쳐 비대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연령 등 상황에 관계없이 누구나 쓸 수 있고, 써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며 “이러한 디지털 전환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그 어느 분야 못지않게 금융권에서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포털 등 든든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로 영역을 확장하는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의 성장은 기존 은행권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이 빅테크·핀테크의 기술과 서비스에 녹아드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에 은행권도 과거의 경직된 모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보다 경쟁적인 자세로 기술 경쟁에 임하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AI 챗봇에 이어 AI 은행원을 선보였다. 아직은 초기인 만큼 금융상식 제공을 비롯한 대표 상품, 서류 안내 등의 기본적인 상담만 가능한 수준이지만, 추후 지속적인 업데이트 과정을 통해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상담업무와 함께 다양한 금융정보도 제공하는 등 기능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AI 상담봇 도입 및 챗봇 고도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상담봇은 예·적금 만기, 대출 연체, 각종 사고신고 등 단순업무에 답변을 제공하고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할 경우 직원에게 연결해 준다. 향후 채널 및 서비스의 확장 및 AI 엔진 추가·고도화 등을 거치며 보다 유연한 AI 상담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앱 ‘하나원큐’를 강화함과 동시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별도의 앱 설치 없이도 한 곳에서 그룹 관계사의 주식·카드 거래와 보험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경을 구현한 바 있다. 통합 앱을 넘어 ‘슈퍼 앱’을 표방한 만큼 금융 서비스 외에 중고차 거래, 실손보험 빠른청구 등 다양한 기능으로 고객 접점을 늘리며 유입 확대를 노리는 모습이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이다. 은행마다 부동산 정보 제공을 비롯해 공과금 납입, 각종 배달 서비스 등이 추가되며 금융 플랫폼을 넘어 생활 금융 플랫폼을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 확산하는 것도 금융권 체질 개선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카드 앱에 각종 신분증이나 회원카드를 한데 모으고, 포인트를 통합 조회·이용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된 서비스다. 안면인식과 음성인식 등 기술을 결합해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시도도 한창이다. 최근 QR코드 인증이나 고지서 발송 등 금융사별로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는 것도 같은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존 금융권의 노력에도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공세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포털을 바탕으로 이미 일상 곳곳에 침투하며 쇼핑, 페이 분야에서도 강자가 된 네이버를 비롯해 카카오톡에서 쌓이는 빅데이터와 여러 분야의 연결성이 강점인 카카오, 강력한 물류 장악력을 바탕으로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으로 보폭을 확장하는 쿠팡 등 빅테크·핀테크 또한 저마다 경쟁력을 갖추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금융권의 주도권 싸움은 금융 및 디지털 기술·서비스 경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생태계나 플랫폼 차원의 생존경쟁”이라며 “이를 위해 기술 혁신은 물론 마케팅을 포함한 ‘쩐의 전쟁’이 당분간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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