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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가해는 숨기고 피해만 말하는 위험한 민족주의

입력 : 2021-08-14 01:00:00 수정 : 2021-08-13 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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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휴머니스트/3만3000원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휴머니스트/3만3000원

 

1987년 한 문학평론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끌려가는 유대인을 방관했던 폴란드인의 행동을 반성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반응은 그 내용에 대해 공감과, 나치에 항거하며 큰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가 그럴 리 없다는 부정의 두 가지로 갈렸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폴란드의 사례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하나로 제시한다. 그것은 희생자라는 자리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편한지를 보여주며 폴란드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드러나는 민족주의의 새로운 모습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본을 통해 종종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2차대전 전범국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 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일본은 스스로를 원자폭탄 피해자로 부각한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노골적인 행위보다 교묘해서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다.

책은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님을 지적한다. 한반도, 만주에 흩어져 살던 일본인들이 2차 대전 말 귀향을 하면서 겪었던 폭력의 당사자 중 하나가 한국인임을 주장한 ‘요코 이야기’라는 책에 쏟아진 한국 사회의 비난, 일제의 동남아 침략 선봉에 섰던 B, C급 전범으로 처형된 이들을 “어쩔 수 없이 일제에 복무한 불쌍한 조선인 청년들”로 애써 변호하는 태도가 그렇다. 이는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함으로써 ‘집합적 무죄’ 의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누가 더 ‘우월한’ 희생자인지를 다투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기억 전쟁’의 “위험하고도 유력한 이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희생과 고통의 기억을 줄 세움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반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민족 사이의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다. 저자는 희생자의 지위를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위험한 것은 성찰을 포기한 채 도덕적 정당화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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