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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도 기억하는 올림픽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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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11 08:07:34 수정 : 2021-08-12 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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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동생이 쏘아 올린 이 말 한마디가 화기애애하던 집안의 분위기를 일순간 ‘영하 10도’로 만듭니다. 만년 4등만 하던 수영선수 준호는 엄마의 발 빠른 섭외력으로 전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 코치 광수를 만나면서 1등과 불과 0.02초 차이의 2등을 하고 은메달을 거머쥐고 ‘금의환향’합니다. 

 

영화 ‘4등‘의 한 장면입니다.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의 선전만큼은 눈이 부신 그런 올림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열정, 눈물과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올림픽이라 더욱더 갚진 시간이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고, 메달권 선수와 종목에만 주목했던 예년의 올림픽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잠시 생각해봅니다. 이번 올림픽이 왜 그토록 절실하고 간절했는지. 아마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이 늦춰진 올림픽은 선수들에게 그 어느 해보다 더욱 혹독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운동이 몸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야 하는 것이기에 선수들에게 ‘1년’은, 이를 업으로 하지 않는 우리의 ‘10년’과 맞바꿀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심장 박동수까지 체크하며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를 경기에 목이 터져라 ‘해보자’를 외쳤으며,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눈부신 성과를 보여준 그들의 모습에서 매순간 소중하지 않은 기록이나 가치는 없다는 것을 또 한번 느낍니다.

 

한때 관용구처럼 쓰였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더러운’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모두는 ‘1등만 기억하는’ 것 자체에 큰 염증을 느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세상에는 1등보다 2∼4등이 더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 우스갯소리가 갖고 있는 맹점과 허망, 부당함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1등만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고, 전부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꼰대’이고 ‘촌스러운 사람’입니다. 일부러 꼰대가 되거나 촌스러운 이가 되고 싶진 않으시죠? 

 

아직도 어디선가는 대학을 서열화하고, 아이들의 성적을 줄세우기 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습니다. 1등이 아니어도 그 사람 자체가 빛난다면 기억되어야 하고, 기억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대가 왔음을, 또 열렸음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더 이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4등도 당당히 기억될 수 있는, 조금은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입추가 지났으니 조금 있으면 또 입시라는 칼바람이 부는 시간이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가 기억했던 ‘4등’들의 이야기는 ‘월요일이 되면 싹 다 잊어버리는’ 한편의 주말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아,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이야기하는 추억의 한페이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 마음, 이 생각이 조금 길게,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우리 ‘4등’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까요? 우리는 모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4등’들이니까요. 

 

세상 여기저기에서 나는 왜 맨날 ‘4등’일까 고민하는 수많은 수험생과 그들을 바라보는 학부모님을 응원합니다.   

 

이윤영 작가(‘10분초등완성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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