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 손쉽게 프로그램 공유
이용자들 “백신 확보 못 한 정부 탓”

“백신이 없는 상황이 문제지 ‘매크로’를 쓰는 것이 반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장인 장모(29)씨는 이달 초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코로나19 잔여백신을 예약했다. 매크로는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인 명령 수행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사람이 일일이 클릭해야 하는 일을 자동으로 하는 데 많이 쓰인다. 최근 잔여백신은 젊은층 사이에서 예약 경쟁이 치열해 알림이 떴을 때 남들보다 ‘빨리’ 클릭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크로를 쓰면 예약을 위해 장시간 사이트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되고, 성공할 때까지 명령을 반복하기 때문에 실패 확률도 낮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장씨에게 매크로 사용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예약 기회를 박탈한 ‘편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다른 국가에서는 백신을 충분히 확보해 예약 경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렇게까지 예약을 하게 만든 정부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백신 예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씨처럼 매크로를 이용해 예약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주부터 젊은층의 ‘백신 예약 10부제’가 시행되고, 백신 수급에 차질까지 발생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백신을 맞으려는 삐뚤어진 행태가 확산 중이다. 정부도 이 같은 ‘반칙’을 알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일 세계 최대 소스코드(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로 번역하는 프로그램)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에는 국내 코로나19 백신 예약을 자동으로 해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여럿 올라있다. 이 프로그램은 누구나 다운로드받아 사용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지도 API(오픈 응용프로그램 환경)와 병원 좌표를 활용해 잔여백신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예약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직접 클릭할 필요가 없어 ‘손대지 않고도’ 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매크로를 사용해 백신 예약에 성공했다는 후기를 찾는 것도 쉽다. 대학원생 이모(26)씨도 매크로를 사용해 백신을 예약했다고 한다. 그는 “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다뤄본 사람이라면 매크로 제작은 일도 아니다”며 “편법으로 이득을 취한 것은 맞지만,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경쟁을 붙였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매크로 사용이 적발돼도 감염병예방법상 ‘부정한 방법’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처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우진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시스템관리팀장은 “매크로 사용 의심 사례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차단하고 있다”면서도 “관리 인력보다 매크로를 새로 만들고 배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 다 막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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