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출된 수치 평균 6.5도·R9등급 기재
요약보고서엔 “5.6도… R9 미달” 명시
본지 입수 원본 추정 서류에도 ‘5.6도’
납품사, 결과값 숫자만 바꿔서 눈속임
코레일, 안 걸렀나 못 걸렀나… 책임 논란

KTX-산천 특실에 들어가는 카펫의 화재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의혹을 받아 경찰 수사를 받게 된 A사가 다른 전동차에 쓰인 바닥재 시험성적서도 위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를 납품받은 한국철도(코레일)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합격 판정을 내려 논란이 예상된다.
10일 코레일 전자조달시스템 홈페이지에는 2015년 9월 ‘전기동차 객실바닥개량’과 관련한 시험성적서가 공개돼 있다. 이 계약의 공급업체는 B사로, B사는 A사가 납품한 바닥재로 완성품을 만들어 코레일에 공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A사의 성적서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전자조달시스템에 따르면 A사가 영국 시험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5페이지 분량의 성적서는 미끄럼방지(마찰등급) 시험 결과에 대한 것이다.
이 시험은 윤활유가 묻어 있는 바닥재를 기울이고, 기울어진 각도에 따라 안전화를 신은 사람의 미끄러짐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과 등급은 R9부터 R13까지 나뉘며, 경사도 6∼10도에서 미끄러질 경우 R9을 시작으로 10∼19도는 R10, 19∼27도는 R11 등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제출된 A사의 성적서 3페이지에 나온 측정 결과는 평균 6.5도로 R9 등급에 해당했고, 코레일 담당자는 수기로 해당 페이지에 ‘합격’이라고 기재했다. 하지만 바로 앞 페이지의 보고서 ‘요약’(Summary)에는 “제출한 바닥 표본의 평균 경사도는 5.6도이므로 분류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최소 6도가 넘어야 R9이 되기 때문에 R 등급을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이는 A사가 성적서에서 결과값의 숫자만 바꿔 코레일의 눈을 속였지만, 앞 페이지는 미처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세계일보가 입수한 위조 전 성적서 추정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코레일 제출본과 똑같은 대신 3페이지 결과값이 5.6도로 나와 있으며, 등급 ‘R9 미만’(Less than R9)으로 앞 페이지의 요약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도 이 같은 의혹에 신빙성을 더한다. A사 이모 대표는 이를 묻는 통화에서 “확인 중”이라고만 답했다.

코레일도 시험성적서 요약 부분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숫자만 확인해 합격 판정을 내린 꼴이라 책임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코레일은 당시 이 같은 점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최근 해당 의혹이 제기된 민원을 접수하고도 “철도차량 개량사업의 경우 공사 내규인 ‘물품관리규정’에 따라 물품검사담당이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시험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바닥재 성적의 경우 공사가 직접 참관하여 국내 공인 시험기관에 시험 의뢰 및 결과를 확인하여 위조 사항이 없었음을 확인하였다”고 답변해 빈축을 샀다.
코레일은 이후 세계일보 취재에도 “계약자·검사자 동반하에 시료 채취 및 각인, 공인시험기관 시험 의뢰, 시험기관에서 검사자로 성적서 발송, 결과 통보가 이뤄진다”며 “따라서 위·변조가 시스템적으로 불가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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