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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고통…9번째 탄원서 제출한 01X 이용자 “전화번호는 사유재산. 끝까지 싸울 것”

입력 : 2021-08-16 14:57:06 수정 : 2021-08-17 1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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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 종료에 01X 이용자들 여전히 반발
"부모님 유품", "삶의 일부" 등 사연 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년 동안 충분히 공지했다"

“일단 임시로 010 개통해서 쓰고 있어요. 고통스러운 마음이 크죠.”

“착신 전환해서 문자는 오는데 이것도 언제 끊길지 모르겠네요.”

 

지난 6월30일 LG유플러스를 마지막으로 2세대 이동통신(2G) 서비스가 완전 종료된 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이른바 ‘01X’(011, 016, 017, 018, 019) 번호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용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앞서 01X 번호 유지를 원하는 이들이 꾸린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지난해 8월 제기한 헌법소원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요즘에도 매주 금요일마다 제출하고 있다. 지난 6월1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 후 이번 달 13일까지 총 9번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정부와 이동통신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온 바 있다.

 

운동본부의 신대용 매니저는 “우리가 원하는 건 01X 번호 유지뿐이며 다른 보상이나 2G 서비스 유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잘못된 ‘010 통합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2G 서비스 종료를 추진하면서 기존 이용자 번호를 ‘몰수’하려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이는 공무원 특유의 획일화가 반영된 잘못된 정책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01X 번호로 전화 통화를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헌법재판소 판결 속결을 촉구하며 제출한 탄원서. 이들은 앞으로도 매주 금요일 탄원서 제출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제공

 

이처럼 010 통합을 반대하는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누구나 ‘절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돌아가신 부모님 명의의 번호라 유품과 같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민을 가 연락이 끊긴 친구의 소식을 기다린다”고 간절한 이유를 든 이용자도 있다. 가출한 아들, 행방불명된 아버지, 실종된 손녀가 유일하게 기억했던 번호라 ‘언젠가 연락이 오겠지’ 하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한다. 

 

김고봉(46)씨는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는데 기억할 만한 게 없었다”며 “그래서 요금을 계속 내면서라도 모친 명의의 011 번호를 유지했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러다 작년에 착신이 끊겼는데 착잡하더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영업자인 운동본부의 한 회원은 “전화 주문으로 택배 배송을 주로 하는데 예전 번호로 (연락이) 오면 그대로 고객을 잃는 것”이라며 “생사와 직결된 문제”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회원은 “과거 80대 노모가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010 통합 전 번호만 기억하시더라”라며 “다행히 저는 20년 동안 번호를 바꾸지 않아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1999년부터 011 번호를 사용해왔다는 신선미(44)씨는 “01X는 단순 식별 번호가 아니라 제 이름과도 같은, 삶의 일부”라며 “010 번호도 포화 상태라는데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화번호는 국가 자원? 사유 재산?

 

01X 번호 폐지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이를 ‘국가 자원’으로 보는 정부와 ‘사유 재산’이라 맞서는 이들 이용자 간 근본적인 시각차가 그 배경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서 2002년 “식별번호 마케팅 경쟁 문제를 해소하고, 번호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취지를 앞세워 010 통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200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이통 사업자가 5개로 늘어나자 경쟁이 치열해졌고 식별번호를 브랜드화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따른 불공정 시비가 불거지는 한편 국가 자원인 식별번호를 사적 자원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자 이를 해소하고자 통합정책이 추진된 바 있다.

 

010 통합을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맞선다. “개인에게 판매된 번호를 국가가 임의로 전환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이다.

 

사법부에서는 정부의 손을 들어줘왔다. 

 

2011년 정부의 010 통합 정책을 상대로 제기된 위헌 소송에 당시 헌재는 “이동통신 번호는 개인 인격이나 인간 존엄과 관련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법이라고 판결 냈다. 지난해에도 SK텔레콤을 상대로 번호이동 청구 소송이 제기됐으나 통합에 반대하는 이용자들은 패소하고 말았다.

 

운동본부의 정미경 부매니저는 “2011년 헌법 소원 당시는 2G로 01X 번호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기 결정권 침해가 없다고 기각시킨 것”이라며 “01X 번호 유지가 불가한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책적인 규제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11일이 헌법소원을 추가 제기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라며 “왜 판결이 미뤄지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아울러 “패소하더라도 추가 재판을 신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자원정책과장은 “20년 전부터 충분한 시간을 두고 통합정책을 진행했다”며 “전체 핸드폰 이용자 중 1% 미만인 01X 이용자들을 위해 이미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밝혔다.


김수연 인턴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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