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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기다렸더니 오차 승인이 필요없다고?… 올림픽 개최를 하고싶긴 하니? [남정훈 기자의 여기는 코림픽]

, 2020 도쿄올림픽

입력 : 2021-07-21 20:30:00 수정 : 2021-07-21 19: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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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활동계획서 승인 ‘복불복’
올림픽 개최하고 싶은 건지 의문
지난 17일 오후 일본 나리티공항에서 2020 도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향해 손 피켓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지바=뉴스1

도쿄올림픽 출장을 오기 전, 일본 생활을 해본 한 지인이 한마디 툭 던졌다. “일본이 경제 대국이긴 해도 일 처리는 완전 아날로그에 허술해. 가서 한번 직접 느껴봐”

 

지인이 무심코 던진 충고를 몸소 체험하는 데는 입국 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20일 오후 1시 30분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본지 기자들보다 먼저 입국한 타 언론사 기자들의 고생스런 나리타 공항 ‘탈출기’를 익히 들은지라 각오는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일 처리는 허술하고 느슨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의 방역 시스템의 핵심은 관계자들의 코로나19 관련 건강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오차(OCHA) 애플리케이션이다. 여권번호와 출입국 정보, 숙소, 건강 정보, 경기장 방문 계획 등을 담아 ‘활동계획서’를 제출해 조직위가 승인을 하면 오차 앱이 활성화되고, 방역 심사에 필요한 QR코드를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오차 앱의 활성화 여부가 활동계획서의 퀄리티와는 관계없이 복불복으로 승인된다는 점이다. 출국 직전 활동계획서가 승인된 언론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도 다수다. 활동계획서 승인을 위해 수십 통의 이메일을 조직위에 보내도 승인이 쉽지 않았다. 

 

본지 기자들도 일본 입국 때까지도 활동계획서가 승인되지 않아 오차 앱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조직위는 오차 앱이 활성화되지 않은 기자들을 따로 모아 대기시켰다.

 

오차 앱 활성화만 오매불망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몇 차례 물어도 돌아온 대답은 “조직위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원론적인 답변 뿐이었다. 

 

슬슬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아내던 중 조직위 직원들이 다가와 오차 앱 활성화 대신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와의 접촉 이력을 통지하는 앱인 코코아(COCOA)를 통해 입국을 시켜주겠단다. 그 순간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이렇게 다른 앱으로 해 줄 수 있는거면 두 시간 넘는 시간을 왜 기다리게 한 거냐”라고 항의하자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화가 폭발한 이유가 단순히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려서만은 아니었다. 미국 NBC 기자도 오차 앱 비활성화로 같은 장소에 대기하러 왔는데, 이때는 조직위 직원 4~5명이 달라붙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우리보다 한참 늦게 왔음에도 다음 단계 방역 절차로 먼저 넘어갔다. 반면 우리보다도 대기 장소에 먼저 온 에스토니아 기자는 여섯 시간을 넘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NBC가 중계권료로만 1조원을 내는 세계 최대 중계권 방송사라고 해도 이처럼 심한 차별을 겪어야 하다니. 출신국의 국제적 위상, 매체의 경제력에 따라 대기 시간조차 차별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불같은 내 항의에 조직위 직원은 “에스토니아 기자는 여섯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며 핑계를 댔다. 이 말 속에는 “여섯 시간 기다린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넌 꼴랑 두 시간 기다려놓고 그렇게 화를 내느냐”라는 뜻을 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난 15일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바라본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국립경기장 모습.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모든 방역 절차를 마치고 나리타 공항을 탈출한 시간은 오후 6시 30분. 미디어 지정 숙소로 이동하는 마지막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디어 셔틀을 타고 한 터미널로 이동해 그 터미널에서 기자 한 명씩 방역 택시에 태워 호텔로 수송하는 게 조직위가 택한 코로나19 예방 방법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방역 택시 기사에게 제출하는 ‘통행증’ 같은 서류를 조직위 직원이 호텔 이름과 주소 등을 직접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디지털 시스템을 통해 클릭 몇 번이면 처리할 일을 몇 분을 걸려 처리한 것이다. 일본이 세계 경제 3위의 대국이긴 해도, 디지털화만큼은 대한민국에 한참 뒤져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 도착해 보니 입국 전 오차 앱이 활성화되어 우리보다 한참 먼저 공항을 빠져 나간 타 언론사 선배들이 체크인 중이었다. 오차 앱이 활성화되어도, 비활성화되어도 호텔 도착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정말 코미디 같은 하루의 화룡점정이었다.

 

참고로 입국 이틀째인 21일에도 여전히 나의 오차 앱은 비활성화 중이다. 나의 활동계획서는 아직도 조직위 직원의 이메일함에 잠자고 있는 걸까. 문득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너희들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긴 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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