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대
군 수뇌부 책임론 일파만파
부대원들 이르면 20일 귀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집단 발생이 확인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에서 19일 확진자가 추가로 확인돼, 전체 승조원의 82%가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파병부대가 감염병으로 작전 불능에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기준 청해부대 34진 승조원 179명이 추가 확진돼 누적 확진자가 247명이 됐다. 승조원 301명 가운데 82.1%가 확진된 셈이다. 함장을 비롯한 상당수 장교도 확진자에 포함됐다. 잠복기를 감안하면 확진자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합참은 전날 승조원 1명이 어지럼을 호소해 현지병원 외진 후 입원하면서 입원환자는 16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입원환자 중에 중증환자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증상이 심한 1명은 집중 관리를 받고 있다.
이번 청해부대 집단감염은 최근 110여명이 확진된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의 2배를 웃돈다. 지난해 2월 군 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대 규모다. ‘군 수뇌부 책임론’이 거세지는 대목이다.
사태 수습을 위한 군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전날 200명 규모의 특수임무단을 태우고 아프리카 현지로 출발한 공군 공중급유수송기(KC-330) 2대는 이날 오후 청해부대가 정박해 있는 아프리카 해역 인접 국가에 도착했다.

국방부 이경구 국제정책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수임무단은 해군 148명·공군 39명·의료진 13명 등 약 200명으로 구성됐으며, 전원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백신 접종도 완료했다. 해군 148명은 현지 방역조치가 마무리되면 청해부대 34진과 비대면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 문무대왕함을 인수해 국내로 복귀한다. 청해부대 34진 부대원들은 수송기를 이용해 이르면 20일 오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부대원들은 입국 직후 PCR 검사를 다시 받고, 확진자는 병원과 생활치료센터로 보내질 예정이다.
이날 국내에서는 코로나19 4차 유행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면서 확진자수가 지난 3차 유행의 60%에 도달한 상황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4차 유행이 시작된 6월23일부터 이날까지 27일간 총 확진자는 2만7310명이다. 3차 유행 시작 후 같은 기간 확진자는 1만1470명이었는데, 이번 4차 유행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3차 유행 진행 기간(69일)의 3분의 1을 조금 지난 시점이지만, 환자는 전체 3차 유행 4만5569명의 60%에 이른다.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날까지 뚜렷한 하락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발생 주간 일평균 환자는 수도권 거리두기 시작일인 12일 1141명에서 이날 1387명으로 계속 상승 중이다. 이날도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일요일 발생 최다인 1252명으로 집계되고, 비수도권 비중은 4차 유행 시작 후 가장 높은 32.9%를 나타내는 등 각종 기록이 세워졌다.
정부 계획대로 고강도 조치 ‘짧고 굵게’를 할 수 있을지는 이번 주가 고비다.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 4단계가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청해부대 집단감염 ‘3중 부실’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승조원 82%가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것은 군 당국의 안이한 판단과 대응에 따른 총체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얼마 전 공군 여중사 성추행 피해 사망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군이 또다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지난 4월 해군 상륙함 고준봉함에서 확진자 38명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함정 내 집단감염 우려가 현실이 됐는데도, 이를 등한시하고 선제적 방역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군 수뇌부의 책임이 커 보인다.
◆안이한 대응이 ‘화’ 키워
국방부와 합참은 지난 16일 문무대왕함 승조원들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실이 처음 확인된 뒤 “청해부대 34진은 2월에 출항해 파병 전 예방접종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3월 시작된 군 의료진 예방접종과, 5월 일반 장병 접종 일정에 비춰 2월 8일 출국한 청해부대 34진은 물리적으로 접종 대상이 될 수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예방접종을 했다가 자칫 ‘아나필락시스’ 같은 이상반응이 발생하면 응급처치가 어렵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승조원 중 30세 미만 장병은 화이자 백신을 맞혀야 하는데, 이를 보관할 초저온 냉동고가 문무대왕함에는 없다는 것도 제시했다. 출항 전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승조원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아 다소 안심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은 지난달 28일부터 1일까지 군수물자 적재를 위해 아프리카 아덴만 인근 기항지에 접안했고, 기항지에서 떠난 첫날인 지난 2일 첫 유증상자가 발생했다. 단순 감기로 여겨 합참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후 유사 환자가 속출하자 청해부대는 8일 뒤인 지난 10일 승조원 40여명에 대해 ‘신속항체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모두 음성으로 판정되자 이 결과만 믿고 환자들에 대한 격리 등 추가 방역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첫 감기 환자 발생 열하루 뒤인 지난 13일에서야 인접국 협조 아래 유증상자 6명의 샘플로 PCR 검사를 의뢰했다. 이틀 뒤 이들 모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일과 10일, PCR 검사를 의뢰하고 즉각적인 격리조치를 취했다면 급속한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청해부대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 키트 대신 감염 식별력이 떨어지는 신속항체검사 키트(800개)를 보급한 국방부와 합참의 처사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엔 도움·백신 해외 반출 고민 안 해
청해부대 파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따른 것인 만큼 유엔에 백신을 요청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도 군 당국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수입 백신의 해외 반출을 질병관리청과 논의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함이 국제법상 소속 국가 영토로 간주하는 치외법권 지역인 점을 고려하면 유엔과 협조해 기항지 또는 바레인에 있는 연합해군사령부(CFM)에서 백신을 접종할 근거는 충분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해외파병 부대 등 백신을 국외 반출하는 것은 세부적으로 논의한 게 없다”면서도 “국제법상 한국 국민에 대한 접종이기에 제약사와 협의해서 백신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행기를 통해 백신을 보내야 하는 유통 문제 등으로 어렵다고 봐 백신을 공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 관계자도 “백신 해외 반출이 어렵다며 수수방관하고, 유엔 협조도 구하지 못한 무능한 군 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한목소리 비판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정부와 군이 우리 장병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19일 논평에서 “최초 유증상자가 나왔을 때 감기약을 처방할 게 아니라 곧바로 PCR 검사 등으로 확인했다면 참사를 막았을 것”이라며 “군 당국의 안일함과 무능함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군 당국은 안일한 부분이 없었는지 철저히 규명하고, 해외 파병부대 전반에 대한 점검과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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