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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 두리번거린 아이…어른이 먼저 차를 멈출 수는 없었나요

입력 : 2021-07-19 17:05:41 수정 : 2021-07-19 17: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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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마전동 ‘스쿨존 사고 현장’ 다시 가보니 / 도로 환경은 개선됐지만 운전자 안전의식은 아직…
지난 5월, 유치원에 가는 딸의 손을 잡고서 횡단보도 건너던 엄마가 레이 승용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한 인천 서구 마전동의 한 삼거리. 김동환 기자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한 번….

 

19일 오후 3시쯤, 인천 서구 마전동의 한 삼거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가 횡단보도를 앞에 둔 채 계속해서 좌우로 시선을 보냈다.

 

처음에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싶었던 아이는 잠시 후, 좌우에서 오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자 조심스레 앞으로 한 발 떼더니, 마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재빨리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자그마한 학원 가방을 멘 채 길 건너 상가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에야,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린 게 아니라 건너편 학원에 가려 차가 오지 않는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손을 들까말까 움찔했던 아이에게는 아무래도 부모의 ‘차 조심’ 당부가 있었던 듯도 했다.

 

방금 아이가 있던 삼거리는 지난 5월, 유치원에 가는 딸(4)의 손을 잡고서 횡단보도 건너던 엄마가 레이 승용차에 치여 숨진 곳으로, 포털사이트 지도상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와는 130m 정도 떨어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사고로 당시 아이도 다리뼈와 두개골이 부러지는 등 전치 6주의 병원 진단을 받았다.

 

이곳에 신호등은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달 8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기소된 A(54)씨의 첫 재판에서 유족 측은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황토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A씨는 자신의 공소사실을 인정했으며, 그의 다음 재판은 8월12일에 열린다.

 

이날 기자가 건너보니 10여 걸음이면 반대편에 닿을 만큼 일반 성인에게는 횡단보도 폭이 좁지만, 상대적으로 초등생 등 보폭이 좁은 보행자에게는 넓게 여겨질 것으로 보였다.

 

앞서 인천 서구는 지난 5월 인천서부경찰서, 도로교통공단 등 관계기관과의 논의를 거쳐 사고 지점 일대에 교통안전시설을 놓았다.

 

횡단보도 4곳을 주변 노면보다 높게 만드는 ‘고원식 횡단보도’로 개선했고, 3곳에 과속방지턱도 설치했다. 운전자들의 일시정지를 강조하는 안내판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이날 30여분간 지켜본 횡단보도에는 어린이를 포함해 보행자가 종종 등장했지만, 좌우에서 오는 차량은 좀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 진행방향으로 운행했다.

 

오른손을 든 채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계속해서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길 건넌 아이들의 안전의식과는 무척 대조됐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본 기자는 차들이 ‘먼저’ 멈춰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서두에 언급한 여학생이 오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1분 가까이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가 다시금 이해됐다.

 

보행자 보호의무 조항이 도로교통법에 마련되어 있지만, 횡단보도 통행이 발생한 후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더 넓은 범위를 다루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7조는 ‘모든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정지선을 말한다)에서 일시정지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으면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이라는 문구는 들어 있지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 기다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더욱 강화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지만 해당 내용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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