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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 시작된… 신중의 신 '제우스의 고향'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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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1 07:00:00 수정 : 2021-07-11 00: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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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
수많은 역사·신화 간직
크루즈 타고 꿈같은 항해

크노소스 궁전 등
과거의 영광 흔적만 남아
허름한 고고학 박물관 안
수천년전 유적 경이로워
크루즈 해넘이 크루즈에서 만찬을 즐기며 해가 지는 장관을 바라본다. 창문틀이 사각 스크린이 되고 실시간 변하는 태양의 움직임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육지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크루즈는 바다 위에서 고요히 미끌어진다. 크루즈를 품은 물결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조금은 빠듯한 기항지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출항했지만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크루즈 분위기는 차분하다. 혹여 기항지 승선과 하선을 놓칠까 하는 걱정으로 초조한 마음 없이 승객들 모두 온전한 선상에서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항지에서 마주한 승객들 옷차림과는 달리 우아한 드레스와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루의 경험을 공유하며 대화를 꽃피운다. 라운지에는 칵테일 잔을 든 사람들이 낯선 문화를 접하며 느낀 흥분을 전하는 설렘 가득한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하나 둘 자리를 옮기며 식당으로 향하는데, 평소 붐비던 뷔페식 레스토랑보다 정찬식 레스토랑에 더 많은 승객들이 모여든다.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자 그들과 함께 정찬식 레스토랑 입구에서 안내를 기다린다. 운 좋게 창가 테이블에 자리하고 낭만적인 크루즈 분위기를 만끽한다. 정성스럽게 서빙되는 음식을 즐기며 호사를 누리니 승선과 하선으로 지친 크루즈 여행의 피곤함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분위기에 스며든다. 와인 한 잔을 더하니 디저트가 나오고 따스한 분위기는 절정을 이룬다. 하루 일과를 마친 해가 드디어 쉼터로 돌아가는 시간! 인사를 전하며 노을로 하늘을 물들이는 장관을 펼친다. 선상 창문은 영화관 사각 스크린이 되고 실시간 변하는 태양의 움직임은 내레이션 없는 영화를 상영한다. 잔잔한 지중해 바다는 태양을 품고 소리 없이 꺼지는 빛을 검붉은 노을이 덮으며 하루가 저문다.

출항한 크루즈는 깊은 밤, 망망대해에서 바닷길을 열어 또 다른 섬으로 향한다. 전날 저녁 6시에 출발한 배는 12시간 항행하여 아침 6시 즈음 커다란 항구에 멈춘다. 얼핏 봐도 큰 규모의 섬은 끝이 보이지 않는 육지가 펼쳐져 있다. 마주한 정면에 여러 봉우리의 높은 산이 눈에 띄는 이곳이 서양 문명이 시작된 크레타섬이란다.

크레타섬은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으로 지중해 섬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큰 섬이다. 제주도보다 4.5배 정도 크다 하니 섬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대형 크루즈가 정박할 수 있는 두 곳의 항구가 있고 국제선이 오갈 수 있는 공항도 두 곳이나 있다. 좌우로 길고 납작한 형태를 띤 지형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250km 정도 거리라고 하니, 섬 전체를 둘러보려면 여러 날이 걸릴 것 같다. 규모도 놀랍지만 이 섬이 유명한 이유는 역사의 시작과 함께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과 함께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짧은 시간에 훑어볼 수는 없지만 역사책에서, 때로는 신화에서 접한 이 땅에 발을 디딘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신 중의 신이라 불리는 제우스 고향에서 하루를 꿈꾸며 역사와 신화, 문학의 배경인 크레타 섬에 하선한다.

크노소스 궁전 크레타문명 전성기인 BC 2000년경에 세워진 궁전 유적. 고대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이나 복원 당시 문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하였다.

크노소스 궁전! 최초의 문명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마주한다. 지나온 많은 유적들이 그러했듯이 온전한 모습이 아닌 폐허에 몇몇 건물 흔적만이 조용히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인구 8만여명이 살았던 고대 왕국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을 띤 채 과거의 영광으로 이끈다. 가이드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신화 속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루스가 갇혀 있던 곳으로 잠시 시간을 되돌이켜 보기도 하고, 무너진 신전 한쪽 황소의 벽화를 따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기도 한다. 넓은 왕궁터를 관람 코스 따라 걸음을 옮기며, 내리쬐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역사의 한켠에 비집고 들어선다. 최초의 문명의 장소에서 어릴 적 들었던 신화를 되새기며 지난 시간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크레타섬 주도인 이라클리온에 위치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고대 크레타문명의 우수함과 화려함을 증명하기에 차고 넘치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열기에 익은 살갗이 벌겋게 달아올 무렵, 크루즈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선하기 전, 서둘러 박물관은 찾는다. 크레타섬을 대표하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이다. 한적한 거리에 있는 박물관은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듯한 외관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니 이보다 더 세련될 수 없다. 차가운 대리석이 피부에 닿은 듯 서늘함이 전해진다. 대리석 벽을 따라 크레타 섬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5000년 역사를 조심스레 담아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 외부에서 봤듯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2층 건물에는 이 지역에서 나온 유적품들로 빼곡하다. BC 3000년, BC 2000년이란 숫자들이 새겨진 유물들을 따라 전시물들을 둘러본다. 체계적이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정리된 유물 하나하나를 바라보니 단순히 오랜된 것 이상의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초라한 듯한 외딴 지역 박물관에서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다. 크레타섬이 주는 역사적인 의미를 조금이나마 접하고 승선하니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사라진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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