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작동시켰다면 원칙상 ‘무효’
법원이 공익 등 따져 증거 여부 결정
‘돌보미 학대사건’ 땐 증거 채택
10개월 아기에게 “미친X 아냐” 욕설
대화 아닌 독백 이유로 대법도 “유죄”
음성권 침해 지적 피할 수 없어
증거 인정돼도 손배소 제기 가능성
일각선 교사 수업권 침해 우려 제기
‘제3자 녹음’ 증거 인정 명암
타인 간 대화 동의 없는 녹음은 불법
‘남편 살해 시도’ 등 예외 인정받기도
민사재판선 증거능력 배제되지 않아
#1. 지난해 10월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다리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들은 “담임선생님 때문에 생겼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A씨는 아들의 손에 소형 녹음기를 쥐여주며 “선생님이 나쁜 말 하면 이거 꾹 눌러”라고 알려줬다. 녹음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뭐라고? 이 XX가 똑바로 말 안 해”, “정신 나간 XX냐?”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향해 폭언한 내용이 생생하게 담겼다. A씨는 즉각 담임교사를 고소했다.
#2. 교사의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 B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었다. “쟤는 맛이 갔어”, “쟤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쟤랑 놀면 자기 인생만 고장 나.” 녹음파일에는 담임교사가 수업 중 B씨의 아들과 일부 학생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담겼다. B씨는 녹음파일을 근거로 담임교사 최모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보육시설이나 학교 등 아동을 잘 보호해야 할 기관에서조차 아동을 학대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자 자녀 보호 차원에서 A씨와 B씨처럼 ‘몰래 녹음’을 시도하는 부모가 생겨나고 있다. A씨 등의 사례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을 상대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이었고, 몰래 녹음한 내용이 교사의 학대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는 게 같았다.
다만 녹음 버튼을 누른 주체가 달랐다. A씨 사례는 교사와 대화 당사자인 아들이 녹음 버튼을 눌렀고, B씨 사례는 교사의 대화 상대방이 아닌 부모가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원칙적으로 당사자인 학생이 직접 녹음한 A씨의 사례와 달리 B씨는 불법녹음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증거로 채택하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담임교사 C씨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뭘까.
◆진실발견 공익 vs 개인의 인격적 이익… 불가피성에 초점 맞춘 하급심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교사 C씨는 2019년 3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교실에서 한 일부 발언이 아동학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아 벌금 500만원으로 형량이 줄었다.
C씨는 “타인 간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한 부분은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학부모 B씨의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2010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효과적인 형사소추 관점에서의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적인 가치와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을 비교해 ‘몰래 녹음’의 증거 여부를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제한된 표현력 △부모와 피해자의 밀접한 관련도 △녹음 외 범죄행위를 밝혀내기 어려운 불가피성 △수업의 공개성 등을 근거로 B씨의 몰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C씨 측의 상고에 대법원은 대화의 성립 여부, 녹음의 불가피성 등을 놓고 심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몰래 녹음은 10개월 된 아동을 학대한 사건에서도 증거로 인정받았다. 2017년 9월 아이 돌보미였던 D씨는 피해 아동의 집에서 말도 못하는 아기에게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X 아니가 진짜”라는 등 큰소리로 욕했다. 아기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도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거나 문제가 없는지 살피지 않는 등 아이 돌보미로서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다.
1심 재판부는 부모가 몰래 집에 설치해둔 녹음기에 담긴 증거를 위법증거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몰래 녹음 외에 증거를 수집하거나 범죄를 적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고 말을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D씨의 일방적인 독백은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지난 1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인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5살 아동을 학대한 증거가 담긴 녹음파일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글을 쓴 학부모는 아이가 ‘선생님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을 수상하게 여겨 옷 속에 녹음기를 넣어 보냈다고 설명했다.
◆‘몰래 녹음’ 인정돼도 음성권 침해 피할 수 없어… 교권 침해 우려도
몰래 녹음은 아동학대뿐 아니라 이혼 사건에서도 드물게 증거로 인정되지만, 피해자 측이 음성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음성권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에 근거를 둔 인격권에서 파생하는 기본권이다. 대화의 당사자가 녹음하더라도 이로 인해 피해를 보면 손해배상의 청구 대상이 된다.
2019년 선후배 교사끼리 싸움 도중 후배 교사 E씨가 휴대전화로 음성을 녹음하자 F씨가 그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이후 F씨는 E씨를 상대로 “음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모두 원고 패소 결정을 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음성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해 주목을 끌었다. 한 변호사는 “당사자끼리 녹음에서도 음성권 침해가 인정받는 판례가 나오면서 설사 형사사건에서 ‘몰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더라도 음성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몰래 녹음이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될 경우 학교 현장의 무분별한 녹음을 부추겨 교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교육현장에서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아동학대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도 이해가 되지만 ‘몰래 녹음’은 허락받지 않은 참관처럼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수업 때 한 발언으로 수차례 항의받게 되면 학사 지도의 재량도 줄어들어 결국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마트폰 숨겨 아내 불륜 녹음한 남편 유죄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에 기본 설치되는 ‘삼성 음성 녹음’ 애플리케이션은 구글 앱스토어에서 누적 다운로드 10억건이 넘는 등 일상 대화와 통화를 녹음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타인의 허락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이다. 다만 민사소송에서는 녹음이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아내의 외도 증거를 잡으려고 몰래 아내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 유죄가 선고된 판례가 있다. 남편 A씨는 2014년 12월부터 석 달간 집에 몰래 숨겨둔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아내와 낯선 남성의 불륜 통화 내용을 증거로 확보했다.
A씨가 녹음을 근거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아내 B씨는 A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고, A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타인의 허락 없는 녹음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나 일부 예외를 인정받은 판례도 있다. 지난 5월 대구지법 형사2단독 김형호 판사는 칫솔에 몰래 소독제(락스)를 뿌려 남편을 해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내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아내 C씨는 지난해 2∼4월 남편 D씨가 출근한 뒤 칫솔 등 세면도구에 10여 차례에 걸쳐 락스를 뿌리는 등 특수상해 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갑작스러운 위장 통증을 느낀 D씨가 화장실에 몰래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아내의 범행이 드러났다. 영상 속에는 C씨가 “오늘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죽어, 죽어”라고 말하며 남편의 칫솔에 락스를 뿌리는 모습이 담겼다.
C씨는 앞서 자신의 문자 기록을 몰래 보고 대화를 불법 녹음한 혐의로 D씨를 맞고소했지만, 재판부는 각각 선고유예와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몸을 지키기 위한 증거 수집”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사소송에서는 녹음 과정이 불법하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배제되지 않으며, 채택 여부는 사실심 법원의 판단에 결정된다. 대화 당사자가 한 녹음은 형사·민사재판 모두 증거 활용에 문제가 없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반세기 만의 유인 달 탐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94.jpg
)
![[기자가만난세상] 노동신문 ‘혈세 논쟁’을 끝내자](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85.jpg
)
![[삶과문화] 인생의 작용과 반작용](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364.jpg
)
![[박일호의미술여행] 고단한 삶을 품은 풍경화](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08.jpg
)







![[포토] 박하선 '벚꽃 미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300/2026040252070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