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크림반도 러에 빼앗긴 치욕 잊었나

강대국 러시아와 이웃해 늘 침략 위협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가 독립 30주년 기념 군(軍)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전투복 차림의 여성 장병들한테 전투화 대신 하이힐을 신기려 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우크라이나는 7년 전 허약한 군사력 탓에 크림반도를 러시아한테 빼앗기는 쓰라림을 당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영국 매체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전날 여군들이 중간 높이의 힐이 달린 검은 펌프스 신발을 신고 행진 연습을 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는 오는 8월 24일 열릴 독립 30주년 기념 군 퍼레이드를 위한 연습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오랫 동안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일원으로 있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
이번 행진 연습에 힐 신발을 신고 참여한 여성 사관후보생 이바나 메드비드는 “오늘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힐 신발을 신고 연습을 했다”며 “군화를 신었을 때보다 약간 힘들었지만 그래도 노력했다”는 소감을 국방부 측에 전했다. 국방부는 하이힐이 여성 군인에게 적용되는 복장의 일부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식 행사 등에서 정복을 입을 때나 신는 힐 신발을 전투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신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 거셌다. 당장 야당 등에서는 ‘성차별’이자 ‘여성 혐오’에 해당한다고 반발했다. 야당의 한 여성 의원은 “이보다 더 바보 같고 해로운 아이디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여군 역시 생명을 무릅쓰고 있다. 조롱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여성 언론인 역시 우크라이나 국방부를 겨냥해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에 빠져 있다”고 일갈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고개를 숙였다. 안드리이 타란 국방장관은 사관후보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하이힐을 더 나은 인체공학적 신발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직후인 1993년부터 여성의 군입대가 허용됐다. 2018년부터는 보병, 포병 등 전투병과 복무도 가능해졌다. 현재 장교만 4000명을 포함해 3만1000명 넘는 여성이 우크라이나 군대에서 복무 중이다.
이들의 주적(主敵)은 단연 이웃의 러시아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거주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분리돼 러시아에 속하고 싶은 친(親)러시아 소수민족을 지원하고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꾸준히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대비태세가 허술한 틈을 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인 크림반도를 병합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력한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고 또 국내에선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싸우는 것이 우크라이나 군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이번 여군의 복장 논란을 지켜본 한 중견 정치인은 “지금까지 1만3500명 이상의 여군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싸워왔다”며 “여군은 정당한 평가와 예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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