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세력 연대기/앤드루 램버트/박홍경 옮김/까치글방/2만5000원
기원전 4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내륙과 이집트 등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름과 포도주, 목재 등에 대한 무역 활동이 벌어졌다. 크레타섬 세력이 먼저 등장했고, 페니키아 도시 등도 부상했으며, 카르타고 세력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해양 세력이라는 정체성이 정립된 건 아니었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의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 이후 해상 세력으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했다. 즉 아테네의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육전이 아닌 해전에서 승부를 내기로 하고 해군 전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아테네는 소규모 도시나 변방이던 이전의 해양 도시들과 달리 규모도 크고 부유했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짐으로써 함대를 효율적으로 운용한 해양 세력이었다. 하지만 아테네는 살라미스해전 이후 주변 도시국가들을 압박해 델로스 동맹을 만들고 해양 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스파르타의 두려움을 야기하고 만다.
영국의 해군사 전문가인 앤드루 램버트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신간 ‘해양 세력 연대기’에서 고대 아테네를 비롯해 역사 속 해양 세력으로 칭할 수 있는 카르타고, 근대의 베네치아와 네덜란드, 현대 영국의 사례를 차례로 살펴본다.
저자는 해양 세력이 대륙을 향한 야욕을 불태우기보다는 패권국을 경계하며 국제사회의 균형을 이루려 했으며, 무역 활동을 위협 받지 않는 한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통상 바다를 기반으로 힘을 키우고 대륙 진출을 노리거나 지역 패권을 꿈꾸는 국가나 지역을 가리키는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책에 따르면,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카르타고는 무역을 중시하고 전쟁을 회피하면서도 대륙 제국 로마의 야욕을 억제하여 국제사회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로마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지자 동맹을 통해 대항하고자 했지만, 평등한 문화를 두려워한 로마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괴됐다.
근대의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공화국 내에서 독특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상업과 자본을 중시하고 고도의 관료제와 법률체계를 발전시켰으며, 네덜란드 공화국의 경우 해안에 접한 3개주는 해양 세력의 정체성을 받아들였지만 내륙의 4개주는 그것을 거부하면서 갈등 속에 해양 세력의 정체성이 좌절됐다. 최후의 해양 세력인 영국은 헨리 8세가 대륙에서 분리하면서 해양 세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비록 현재 해양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세계 무역 등 해양 세력이 구축한 지적 유산이 오늘날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즉 군사보다 상업을, 권력 집중보다 평등화를 중시한 해양 세력의 의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법치, 자본주의적 포용성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중국이 해양 패권을 차지한다면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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