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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이번 생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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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24 08:19:34 수정 : 2021-06-24 08: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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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누구나 처음이다. 모두가 왕초보이다. 10살 먹은 아이는 11살이 처음이고, 100살 먹은 할머니는 101살이 처음일 것이다. 미리 연습할 수도 없고, 잘못 살았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것이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우리는 평생토록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작가 고미숙은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에서 이렇게 썼다. “지구는 탄생 이래 한 번도 같은 날씨를 반복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을 보고 사계절이 매번 똑같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계절이 없고 똑같은 잎사귀가 없다. 모두가 이번 생은 처음이다. 다들 처음인 생을 힘들게 살아간다. ‘왜 나만 힘들지?’라고 생각하지 말자.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들다.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작은 씀바귀를 바라본다. 낮에 활짝 꽃을 피웠던 씀바귀는 해가 지면 꽃 문을 꽁꽁 걸어 잠근다. 적막과 어둠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렇게 씀바귀도 홀로 생을 버티는 중이다.

 

모든 존재에게는 자기만의 고유한 삶이 있다. 무례하게 남의 삶에 훈수하지 말자. 그것이 씀바귀에게 민들레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이다. 한 마디의 말과 다정한 눈빛이다. 그것을 통해 함께 버티자는 무언의 에너지를 보낼 수 있다.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을 주세요’에 나오는 글이다.

 

이솝우화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나온다. 토끼와 거북이 중에서 누구의 삶이 더 힘들까? 빨리 달리는 토끼일까, 아니면 느릿느릿 걷는 거북일까? 거북이가 보기에 토끼는 힘을 안 들이고 쌩쌩 달리는 것 같지만 빨리 달리느라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참아야 한다. 또 토끼가 보기엔 굼벵이처럼 느린 거북이는 편할 것 같지만 무거운 등딱지를 지고 가느라 무척 힘이 들 것이다. 삶은 토끼에게도, 거북이에게도 똑같이 힘들다.

 

토끼에겐 토끼의 속도가 있고, 거북이에겐 거북이의 속도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자신의 속도가 있다. 각자 자기 속도대로 살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무리하게 맞추려고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스스로 상처를 주지 말자. 힘들면 잠시 그늘에서 피로를 눅이자. 그것이 처음인 이번 생을 사는 비결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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