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833명보다 57% 가량 급증
가족들 시신 인수 포기 60%가 넘어
지자체가 처리 주체… 공식통계 없어
전담공무원 없고 장례절차 지원 그쳐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계획 수립 필요
#. 구슬픈 울음소리가 사그라든 지난 2월28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건물 한쪽의 작은 방에선 밥과 국, 나물 등이 올라온 상이 차려졌다. 10여일 전 각각 사망한 A씨와 B씨의 위패가 놓인 빈소였지만, 유족은 오지 않았다. 작별을 고하는 ‘조사’가 낭독된 뒤 생을 맺는 장례식이 마무리됐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던 60대 A씨는 인근 병원에서 암으로 숨졌다. 40대 B씨는 영등포구의 한 여관에서 살다가 심근경색으로 숨을 멈춘 채 뒤늦게 발견됐다. 가족이 시신을 위임한 A씨는 화장 직후 승화원 내 유택동산에 산골(뿌려짐) 됐고, 연고자와 연락이 닿지 않은 B씨의 화장된 유골은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B씨의 유골은 앞으로 5년간 보관되지만, 이 기간 연고자에게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5년간 캐비닛에 보관되는 무연고 사망자… “마지막 길, 애도 받을 권리 달라”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무연고 사망자가 꾸준히 늘면서 ‘그들만의 비극’도 무게를 더하고 있다. 가족과 이웃이 있어도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제도적 허점이 있지만, 법 개정은 여전히 더딘 상태다.
18일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추계한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명으로 2016년 1833명보다 무려 57%가량 급증했다. 이 중 관계 단절이나 장례 비용 등을 이유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한 사례는 60%를 넘는다. 서울시의 경우, 같은 기간 무연고 사망자는 308명에서 667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추산에 불과하다.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수치가 들쭉날쭉하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국회의원 등이 요청할 때마다 지자체에서 자료를 취합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무연고 사망자 처리의 주체는 복지부가 아닌 시·군·구 등 기초지자체다. 중앙 정부가 사실상 한발 떨어져 있으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무연고 사망자 문제는 규모가 축소됐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연고 사망자를 관리하는 일선 시·군·구의 행정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본지가 서울시 일부 구청과 경기도 산하 시·군을 취재한 결과, 무연고 사망자를 전담하는 공무원은 없었다. 다른 업무와 병행해 무연고 사망이 발생할 때마다, 장례식장을 연결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예컨대 공영장례는 노인복지과, 고독사(고립사)는 지역복지과, 고독사 예방은 건강증진과에서 다뤄 일관된 대응이 어려웠다. 한 일선 공무원은 “지침에 따라 장례를 지원할 뿐, 현장에서 업무를 처리한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이는 정책의 혼선을 불러왔다. 서울시는 2018년 광역단체 처음으로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했고, 부산시는 동래·수영·서구 등 기초단체에서 지원 조례를 따로 마련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서울시의 조례 제정 이후 경쟁적으로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는데,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 추이는 급증하고 있다. 두 개념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무연고사란 가족 등 시신 인수자가 없는 죽음을 일컫는다.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더라도 연고자가 주검을 지자체에 위임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홀로 사망한 채 발견됐지만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가 있으면 고독사로 무연고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고독사 추이를 무연고 사망 통계로 엿보기도 한다.

◆ 중장년층 이어 청년층 고독사 급증… “사망자 추이·해법 찾기 위한 중앙 정부 노력 절실”
안타까운 고독사 사연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2019년 서울 성북구에서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성북 네 모녀’는 숨진 지 한 달 가까이 지나 관리인에게 발견됐다. 이들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장례를 치러야 했다.
같은 해 8월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선 기초수급생활자였던 50대 여성이 숨진 지 보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이 여성은 남편과 이혼한 뒤 가족이나 지인과 연락을 끊고 홀로 살았다.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절단 수술까지 받은 터였다. 그해 6월 부산 사상구에서 발견된 60대 남성의 시신은 사망 1년이 훌쩍 지난 백골 상태였다.
박 이사는 2016년 3월 처음 치른 아기의 장례를 잊지 못한다. 부모가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20개월 된 아이로, 어린이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그는 “관이 사과 상자만 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면서 “아기 유골은 여전히 무연고로 파주 추모의 집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연고·고독사 현장을 직접 찾는 특수유품처리업체 크린키퍼스의 이창호 대표도 2012년 겨울 마주한 중년 여성의 죽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한 빌라의 침대 맞은편에는 우울한 분위기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시신이 누워 있던 침대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서 “두 딸을 출가시킨 이 여성은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냉장고도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유품 처리를 위해 매달 2건 이상 무연고 사망 현장을 찾는다.

이처럼 무연고·고독사의 바닥에는 가족 해체와 실직, 빈곤 등 사회·경제적 문제가 혼재한다. 특히 40∼65세 미만의 중장년층은 절반에 육박하는 960여만명이 기준 소득이 없는 것으로 집계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인층이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관리되는 반면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중장년층은 지자체들도 실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독사 실태를 연구해 온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스스로 관계를 끊고 고립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고위험군으로,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년 수천명이 홀로 삶을 마감하지만 아직 무연고·고독사 관리는 미흡한 수준이다. 정확한 국가통계가 없다는 점도 기인한다. 송 연구위원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이유로 경찰 수사 결과를 공유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 변사기록에 동거 여부와 시신 부패 정도만 표시해 공유해도 실태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사회보장 제도로 공영장례 도입해야”
“잊혀지지 않는 무연고자 중 한 분은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년 남성입니다. 세상과 작별하기 위해 산까지 올라가면서 그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공영장례’를 무연고 사망 문제를 풀 첫 단추로 제안했다. 연중 무연고 사망자 발생이 끊이지 않으면서, 고독한 삶을 끝낸 이들의 장례가 오늘도 민간에 의해 간신히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정립과 책임 인식 등 과제가 산적하지만 아직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숨지는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는다. 박 이사는 “국가가 통일된 방향성을 갖고 계획을 수립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물건처럼 ‘치워지는’ 무연고자 사망 문제는 장례 제도란 특수성에 기인한다. 장례비를 지원하는 지자체와 영리를 추구하는 장례 업체를 조율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무엇보다 ‘건강보험’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를 제안했다. 빈곤하고 소외당한 죽음이라도 이웃, 지인, 가족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애도의 시간과 공간을 사회보장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영 장례제는 지자체별 조례에 따라 걸음마를 뗀 상황이다.

장사법과 의료법의 충돌을 해소하는 것은 지난한 과제다. 지난달 나눔과나눔이 치른 무연고 장례는 55건, 이 중 고독사는 17건이었다. 맏형인 한 70대 남성은 올 1월에 이어 동생 2명을 잇달아 무연고로 떠나보내야 했다. 장사법에 따라 형제는 가족 구성원 중 마지막 순위의 연고자다. 반면 의료법에선 사망진단서 발급을 자녀 등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로 제한한다. 시신 인수를 거부한 자녀가 있을 경우, 의사는 형제에게 사망진단서 발급을 거부한다. 이 70대 남성은 “지금 상황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인 부부, 혈연관계 없이 평생 모셨던 이웃 삼촌·이모 등 어르신들은 오늘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쓸쓸히 세상과 작별한다.
외로운 죽음 중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무연고 사망 상담 전화 등이 일부 지자체 지원으로 운영되면서 ‘애도 받을 권리’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시행된 고독사예방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고독사는 전국에서 4196건이 발생해 하루 평균 11명이 고독사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0대 이하 청년층 비율은 10%에 육박했다. 기 의원은 “고독사는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위험군을 발굴해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와 지원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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