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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세트&그림 그 속엔 이런 깊은 뜻이…

입력 : 2021-06-08 19:48:25 수정 : 2021-06-08 19: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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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마인’ 속 숨은 이야기

효원그룹 맏며느리 일깨우는 ‘코끼리 그림’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별도 제작한 소품
전시회 장면에는 실제 장애작가 작품 걸려

‘루바토’·‘카덴차’로 불리는 웅장한 저택은
미술계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뮤지엄 산’
등장인물들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코끼리 그림 등장 장면. tvN 제공

장애아동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는 전시회장. 사업체와 대저택을 관리하는 뛰어난 경영 능력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함, 철철 넘치는 우아함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맏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완벽한 줄만 알았던 주인공의 깊은 내면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한 그림 작품이다. 이어 카메라의 원샷을 받는 그림은 네모난 캔버스에 갇혀 슬퍼하는 듯한 코끼리 그림이다. 드라마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그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좁은 문에 갇혀 울고 있는 코끼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을지 모르니까요.”

한창 중반을 달리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마인’이야기다. ‘마인’에서 미술은 어느 등장인물 못지않게 비중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조연이다. 미술을 알면 더욱 흥미로울 요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도깨비’, ‘미스터선샤인’, ‘사랑의 불시착’ 등 호평 속에 최정상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를 맡았던 김소연 미술감독이 화려한 상류층 효원가(家)의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과 세트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먼저 ‘진짜 그림 작품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코끼리 그림은 드라마를 위해 별도로 제작된 소품이다. 정서현(배우 김서형)은 극중에서 가상의 재벌 효원그룹 회장의 듬직한 맏며느리다. 모자란 남편, 자유분방한 동서 등 가지각색 캐릭터를 가진 가족들로 인해 세상에 효원가가 어떻게 비쳐질지, 그 이미지까지 철저하게 계산해내는 냉철한 면모를 가졌다. 그러면서도 재벌가 내부와 세상의 부조리한 틀과 편견을 바꿔 나가려는 꿈도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정서현을 일깨우는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코끼리 그림인 만큼 제작진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제작진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촬영 전에 코끼리 그림에 대해 회의를 여러번 했다”며 “코끼리가 좁은 문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시 문밖으로 나오는 코끼리는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실제 코끼리는 어떻게 갇혀 있고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는 이것을 어떻게 그릴까를 집중적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찾아봤고 우리에 갇힌 코끼리 그림들을 찾아보다 콜라주 형식의 작품을 발견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코끼리 그림을 제외한 전시회 현장에 걸린 그림들은 실제로 발달장애를 가진 프로 성인작가들의 ‘진짜 작품’이 걸렸다. 극중에서는 효원그룹의 둘째 며느리 서희수(배우 이보영)가 추진하는 장애아동 작품 전시회다. 실제 장애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걸어보자는 아이디어는 코끼리 그림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제작진은 “발달장애 작가들의 화풍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스플래닛’을 알게 됐고, ‘시스플래닛’과 협력해서 ‘열린행성프로젝트’의 작가 권태웅, 김기혁, 윤다냐, 윤진석, 이동민, 장형주 작품을 걸게 됐다. 전시회 촬영일에는 이동민 작가가 직접 현장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시스플래닛’은 예술에 재능이 있는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예술교육을 하고 예술가로 성장시키는 사회적기업이다. ‘시스플래닛’은 2012년부터 ‘열린행성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소속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어왔다.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만큼 이색 간접광고(PPL)도 등장하는데 바로 그림 검색 앱인 ‘아티팩츠’다. 스마트폰 앱인 ‘아티팩츠’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그림을 찍으면 앱이 형태를 인식하고 작품명과 제작 연도, 가격 등 상세 정보를 알려주는 앱인데 극 중 대저택에서 일하는 메이드 직원 김성태(배우 이중옥)가 집에 걸린 작품을 검색해보는 용도로 등장했다.

건축 명소가 등장하는 ‘마인’의 효원가 내부. tvN 제공

‘루바토’와 ‘카덴차’로 불리는 웅장한 대저택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이다. 미술계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건축물이다. 일본 출신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이다. 극 중 서희수(이보영)가 개인 요가 레슨을 받는 독특한 공간도 뮤지엄 산 내부에 있는 명상관이다.

그 외 세트장인 대저택 내부도 의미를 담아 설계됐다고 한다. 김소연 미술감독은 “극 중 ‘계단실’은 층과 층이 한꺼번에 보이는 구조로,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위에 선 누군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래에 있다거나, 한 사람은 내려오고 한 사람은 올라가다가 결국 같은 높이에서 만난다거나 하는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진다”며 “인물들의 우위 관계를 공간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1, 2회에서 엔딩 장면에 ‘도움 주신 홍송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자막이 뜬 것도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홍송원 전 서미갤러리 대표는 2008년 삼성특검부터 채널 tvN을 갖고 있는 CJ그룹까지, 세간에 재벌과 미술이 교차한 사건들에 자주 등장해 대중의 뇌리에 이름이 또렷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미술계 유명인사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공개된 그의 자문 사실만으로도, 드라마에 향후 어떤 내용들이 등장할지 관심이 높아질 만했다.

한편 ‘마인’은 재벌가라는 소재로 이색적인 전개를 보여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재벌 소재 이야기들이 빠지기 쉬운 전근대적 전개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선입견을 강화하는 후진적 궁중암투, 관음증 자극 대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반전을 만들고 있다. 오히려 ‘마인’은 경쟁 구도이거나 대립적 관계로 비치는 여성들인 정서현(김서형), 서희수(이보영), 강자경(옥자연)이 연대하고 서로를 구하며 문제적 환경에 맞선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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