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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마스크 벗은 미국의 ‘백신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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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6 22:44:25 수정 : 2021-06-06 22: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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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접종률 60%… 빠르게 정상 복귀
각국 부러움 속 ‘해외 지원’ 발표
“韓은 특별”… 101만명분 얀센 제공
對中전선 동참 의혹 차단… 동맹 강조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원하시면 쓰시고요.”

최근 미국 워싱턴 인근의 한 사설 미술관을 가족과 방문했을 때 입구 직원한테 들은 말이다. 그는 백신을 맞았는지 묻지도 않았다. 상당수 방문객은 마스크 없이 전시장을 오갔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지난 4월 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 접종자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지 않은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한 이후 미국은 급속히 ‘정상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이지만 백신 확보와 접종에 사활을 건 결과다.

미국 부모들은 코로나19로 잃어버린 2020년을 보상받기 위해 다가오는 자녀들의 여름방학에 ‘보복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CNBC는 특히 “미국인들은 ‘보통’ 여름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고, 그 결과 지출이 늘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올여름 돈을 아낌없이 쓸 계획인 건 아니지만 상당수는 재정 상태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소개했다. 개인 저축률이 급등하며 카드빚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바이러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장담했다. 논란이 있으나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백신 접종 거부자가 여전하지만 CDC의 마스크 지침 변경과 ‘12세 이상’으로 접종 대상을 확대한 이후 다시 접종에 속도가 붙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보건당국이 ‘답답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을 강조하고, ‘어린 자녀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의 접종을 독려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12세 이상 미국 인구 10명 중 6명 이상이 최소 1회 백신을 맞았다.

백신 접종 확대를 통해 정상 생활로 돌아가는 미국은 세계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아울러 잉여 백신을 통한 ‘백신 외교’도 본격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해외에 공유하겠다고 밝힌 백신 8000만도스 중 2500만도스의 공유 계획을 지난 3일 발표했다. 코백스를 통해 공유되는 1900만도스 외에 캐나다·멕시코·인도·한국 등에 직접 공유하는 600만도스가 관심을 모았다. 이미 얀센 백신 101만도스가 한국에 도착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백신 제공 계획을 밝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상황이 나쁘지 않은 한국에 백신을 제공하는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정상회담 전날 백악관 브리핑에선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잉여 백신에 접근하려고 한다”며 “경제적으로 앞선 한국 같은 나라들의 요청을 어떻게 보느냐”는 날 선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백신 2500만도스 배포 계획을 공개하고 하루 뒤 직접 제공 대상에서 빠진 국가 등의 언론을 상대로 전화 브리핑을 했다. 약 30분 동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캄보디아, 아프리카연합 등 기자들이 앞다퉈 자국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배경과 언제쯤 미국의 잉여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게일 스미스 국무부 글로벌 코로나19 대응 및 보건 안보 조정관은 백악관의 기존 발표 내용을 되뇌며 “이번이 시작이고 앞으로 백신 배포 계획이 더 발표될 것”이라고만 답했다. 인도는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30만명이 넘고 4000명가량이 숨진다. 필리핀과 아프리카 국가 등도 상황은 악화일로다.

백악관은 한국이 백신 직접 공유 대상이 된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공급 계획을 밝히면서 ‘한국은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악화한 한·미관계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굳건해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백신 제공 목적은 사실 미군 및 미군과 함께 복무하는 병력을 보호하는 데 있다”며 한국에 대한 백신 제공 정당성을 강조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은 백신을 받는 어떤 나라에도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양보를 얻어내려 하지 않으며 갈취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백신 제공을 통해 한국 정부가 껄끄러워하던 대중 대응 전선 동참을 이끌어낸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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