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18·예명)군의 아버지 A(55)씨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군과 A씨는 5년 전 함께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지만 아들은 학교 친구들의 국민청원과 1인 시위, 언론보도 끝에 2018년 난민을 인정 받았고 A씨는 난민심사에서 두 차례 불인정 결정을 받았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은 난민인정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이새롬 판사는 지난달 27일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사는 “A씨가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 종교를 이유로 박해를 받으리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가 있다고 인정되고 가족결합의 원칙에 의하여도 난민의 지위를 부여할 인도적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종의 진정성, 이란의 기독교 개종자에 대한 탄압, 이란 정부가 A씨를 주목할 가능성, 가족결합권 등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군은 이번 승소에 대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난민신청을 내고 취업이 제한돼 일을 계속 못하고 계셨는데 난민으로 인정되면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이 든다”며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도와주신 분들에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김군은 모델의 꿈을 키우고 있다.
A씨가 김군과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2010년이다. 김군은 이듬해 초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성당에 다녔고 A씨도 2015년부터 김군과 성당에 다녔다. 그 과정에서 이란에 있는 친척들이 A씨와 김군의 개종 사실을 알았고 배교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연락을 끊는 등 신변에 위협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선 개종이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A씨와 김군은 2016년 “자기 종교를 숨기고 이슬람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공포”라며 난민을 신청했지만 한차례 탈락했다.
이후 김군을 응원하는 친구들의 사연과 국민청원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김군은 2018년 10월 난민 인정을 받았다. 반면 한국어에 서툰 A씨는 면접에서 종교 단어들에 대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탈락했다. 다만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김군을 양육해야 한다는 사정을 고려해 A씨를 ‘인도적체류자’로 인정했다. 김군이 성인이 되는 내년에는 양육 사유가 사라져 A씨가 이란으로 쫓겨날 수 있었다.
이번 행정소송을 통해 A씨는 김군과 생이별하지 않아도 될 기회를 얻었다.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면 A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내용 취지에 따라 난민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A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신주영 변호사는 “법무부가 2주 이내 항소하지 않고 판결이 확정되면 판결내용으로 귀속력이 발생해 난민심사 재신청시 A씨가 난민으로 인정받는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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