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대응시스템 획기적 개선 필요
전공이 안보인 만큼 수업시간에 취업에 고민이 많은 여학생들에게 직업 군인을 강추한다. 대한민국에서 스타킹까지 제공하는 직장은 군이 유일하며 나라를 수호한다는 명예는 물론 군인연금은 최고라고 열변을 토한다. 어느 날 멋진 제복을 입고 휴가를 나온 여학생 제자를 보면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군부대 성폭력 자살 사건은 여학생들에게 군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성폭력 사건으로 혼인신고 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의 사례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한다. 이번 군부대 내 성폭력 사건은 지난 1일 청와대 청원 등록 후 하루 만에 30만명 가까운 동의를 얻을 정도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현재 강제추행 건에 대해서는 국방부 검찰에서, 사망 사건 및 2차 가해에 대해서는 군사경찰이 수사 중이다. 피해자가 왜 혼인신고까지 하고 생을 마감했는지는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하겠지만 망자의 고통이 그만큼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군의 행태에 큰 문제가 있다. 우선 피해자의 신고 이후 상관들의 이상한 대응조치는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사건 발생 후 단순 변사로 보고하는가 하면 “살면서 한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피해 호소를 묵살하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던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외부에 알려지면 부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관리 부실로 책임 추궁을 당할 가능성에 눈이 멀어 평소 국방부에서 내려온 지침은 안중에도 없다. 코로나 상황에 방역지침을 어기고 회식하러 몰려다니는 군의 행태는 진짜 한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음은 피해자를 관심병사로 몰아 2차 가해까지 하게 만든 폐쇄적인 군 조직 문화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성추행은 3월 2일에 벌어졌고 피해자가 사망한 시점은 5월 말이다. 무려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군은 무엇을 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낯선 부대로 쫓겨 가듯 떠난 것은 소속부대의 총체적 피해자 보호 실패다. 성추행 블랙박스 영상까지 확보한 상관들은 피해자의 약혼자까지 회유 협박을 하였다. 왜 아직도 군이 갈라파고스 섬처럼 세상과 고립하여 살아가는 집단으로 남아있는지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군복은 상명하복의 상징이지만 일탈의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
군은 “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은 군”이라는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은 물론 총리와 대통령까지 나서 군의 대응을 질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차 가해를 일삼은 이들과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지휘관에 대한 엄중 수사와 문책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군의 남성중심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여군의 비율이 6.8%에 이르고 있고 병역자원의 부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왜곡된 ‘마초이즘’(machoism) 경향은 여전하다. 2015년 국방부가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 진급 배제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지난 5년간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은 4936건에 달했다.
차제에 성범죄 관련 대응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는 획기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군내 성폭력은 상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피해자가 진급과 장기복무 심사를 앞두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불합리한 구조도 병폐의 근원이다. 보여주기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발본색원이 어렵다. 성비위 사건은 발생할 때마다 군에서 퇴출보다는 전출 및 은폐 등의 미봉책에 그쳤다. 최근 서울시는 전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환골탈태 수준으로 변화를 시도 중이다. 인권위가 서울시에 설치를 권고한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는 완전히 독립된 외부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전담특별기구’로 격상시켜 운영된다. 군의 자정 노력이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외부의 따끔한 손길이 불가피하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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