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서울 이태원에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GUCCI GAOK)’을 29일 오픈한다. 구찌는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태원과 자유로운 구찌의 문화가 유사한 점에 착안해 매장을 만들게 됐다. 공식 명칭인 구찌 가옥은 한국 전통 주택을 의미하는 ‘가옥(家屋)’에서 착안했다.
한국의 오방색과 구찌 시그니처 문양을 혼합한 ‘구찌 고사’ 이미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와 함께한 영상을 공개하는 등 다양한 티저 콘텐츠를 공개하며 구찌 가옥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상에는 이날치가 지난 2월에 발매한 음원 수궁가의 ‘여보나리’를 ‘웰컴가옥’으로 개사해, 구찌 ‘신상’을 입은 멤버들이 구찌 돼지머리 고사상 앞에서 흥겨운 춤사위를 펼친다.
‘고사’에서 축원을 빌며 부르는 노래를 ‘비나리’라고 하는데, 원래는 남사당패 놀이의 성주 굿에서 곡식과 돈을 상 위에 받아놓고 외는 고사문이나 그것을 외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행복을 비는 ‘비나이다’의 어원이 됐다. 구찌는 한국 전통 공동체 문화인 ‘비나리’와 ‘고사’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구찌 가옥의 홍보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 본사 크리에이티브 팀이 ‘구찌 고사상’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고사의 의미와 형식 등 한국 전통문화를 최대한 공부했다고 한다. 돼지머리는 기본, 과일을 홀수로 놓는 등 전통 격식에 최대한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구찌 가옥을 앞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브랜드에 담아낸 명품 브랜드가 또 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가 설립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다. 에르메스에서 2019년 한국 전통 조각보 문양을 실크에 프린팅해서 ‘보자기의 예술(L’artdu Bojagi)’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스카프를 출시했다. 에르메스는 매 시즌 독특한 패턴과 색감으로 한정판 상품을 선보이는데, 한국 전통 소품인 조각보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갖가지 조각 천을 삼각, 사각, 원형, 바람개비형 그리고 꽃과 풀잎 모양 등을 이어 붙여 독특한 질서를 만들어서 기하학적으로 배열한 조각보자기는 작은 천 조각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만든 우리 고유의 예술품이다. 물건이 상하지 않도록 감싸 보관하기도 하고 밥상을 덮는 상보로, 그리고 귀한 선물을 싸는 포장재 등으로 썼다. 소박한 밥상 위에 덮인 상보는 훌륭한 실내 장식품이 되기도 했다. 버려진 천 조각을 기워 만든 헝겊이 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최고급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가공돼 현대 복식이나 가구, 공예, 건축 등에 응용되고 있다.

2019년 당시 총괄 아트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가 한국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한 스카프 제작을 제안했고, 실제 보자기 사이즈처럼 넉넉한 가로·세로 140㎝의 대형 숄 형태로 보자기의 특징과 무늬 등을 고스란히 살렸다. 스카프 활용할 때마다 다른 패턴이 나올 수 있도록 조각보자기의 매듭 모양까지도 그대로 담았다. 파리 본사 디자인팀과 제작팀은 한국 자수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소장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제품에 반영했다. 116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일주일 만에 완판됐고 판매 수익금 일부를 한국 문화유산 보존 작업에 기부했다.
명품 브랜드로 재탄생 한 우리 전통문화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수많은 전통문화와 콘텐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대표하는 이렇다 할 명품브랜드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K패션, K팝, K푸드 등으로 뒤죽박죽 섞여 기업이나 디자이너의 독창성이 묻혀 버리는 전통문화의 현주소를 직시해야 한다. 각국의 전통문화를 진정성 있게 반영한 해외 브랜드의 성공 사례들을 바탕으로 진정한 한국 전통문화의 ‘한골탈태(韓骨奪胎)’를 기대해본다.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아쟁 전공.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주)모던한(Modern 韓)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위원과 한국관광공사 코리아 유니크베뉴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케이콘 2016 프랑스 전시 기획, 한국-인도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한국 전통예술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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