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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 기부 3000억, 의료 시스템 구축 마중물 기대”

입력 : 2021-05-25 20:26:55 수정 : 2021-05-25 20: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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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수 서울대어린이병원 진료지원실장

“매년 중증 어린이 환자 수천명 불구
소아암 등 보건·사회학적 통계 없어
불우이웃 돕기식으론 6개월 못 버텨
치료지원·인프라구축 등 체계화 시급
치료 환경 개선돼야 많은 사람 혜택”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 사업단’이 이달 출범했다. 사업단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문진수 서울대어린이병원 진료지원실장은 “이번 기부금이 마중물로 해서 아이들 치료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쪽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문 기자

“소아암, 희귀질환의 경우 치료 기간 등 환자와 가족들의 사회·경제적·정신의학적 고충을 보여주는 보건·사회학적 통계조차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환자수가 적어 접근이 어려우니 조사 자체가 안 된 거죠. 고가의 치료비라는 직접적인 비용도 부담이지만 아이가 한 명 아프면 부모 중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휴가도 없는 돌봄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적 비용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죠. 기부금 3000억원은 유례없는 큰 액수지만, 이 돈을 ‘불우이웃 돕기식’으로 나눠주면 6개월도 안 돼 다 사라질 겁니다. 소아암 진단과 치료 지원에 1500억원, 희귀질환 진단 치료에 600억원, 그리고 연구 인프라 구축 지원에 900억원 등 네트워킹,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둔 이유입니다.”

문진수 서울대어린이병원 진료지원실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소아암과 희귀질환 환아 치료를 위해 서울대어린이병원에 기부한 3000억원 사용처에 대해 ‘시스템 구축’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이달 출범한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 사업단’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은 문 교수는 이번 기부금이 현재의 열악한 어린이 환자 치료 환경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단조차 못 받는 경우 허다해

현재 국내에서 발병하는 소아암 환자 수는 매년 1200명이 넘는다. 여기에 진단조차 못 받은 ‘상세불명 희귀질환’ 100여명을 포함해 희귀질환 환아도 매년 500여명에 이른다.

이렇게 매년 2000명에 가까운 중증 어린이 환자가 늘어나지만 치료는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체적인 환자수가 절대적으로 적기에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을 꺼리고, 신기술이 들어간 신약의 경우 1회 투약에 1억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희귀질환은 진단조차 쉽지 않다 보니 지방에서는 아이의 병명조차 모르는 환자 가족들이 의무기록을 들고 ‘난민’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 경우가 많다.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만 한 해 수백명이다. 국내 소아암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치료 성적은 선진국보다 많이 뒤처지는 현실이다. 고가의 소아암 유전체 분석과 이를 토대로 한 면역·표적 치료제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2100억원이 투입되는 소아암과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 지원은 바로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 문 교수는 “최근 암 치료는 유전자에 따라 약물 반응이 다른 만큼 유전 진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게 백업이 돼야 ‘맞춤형’ 세부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소아암 치료반응 정밀유전체 검사 프로젝트’, ‘불응성 백혈병 환아 면역항암제 치료 프로젝트’ 등 각 프로젝트에 따라 전국의 어린이병원이 각 환아에 필요한 치료를 신청하면, 사업단에서 학문적 경험과 치료 노하우를 공유하며 지원하는 형식이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는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치료 비용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연구기반 프로젝트를 통해 병원 간 협력을 통해 지원됩니다. 항암 치료 효과를 정확히 판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아이들에게 맞는 치료를 찾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죠.”

다만 억대의 치료제 사용에 관해서는 집행위원회의 고민이 깊다. 면역항암제 ‘킴리아’의 경우 1회 비용만 5억원. 매년 10명만 지원해도 기부금은 순식간에 바닥난다. 고가의 약제를 그대로 쓸지,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약으로 대체해서 비용을 낮추고 향후 신약 개발 연구까지 이어지도록 할지 여부는 프로젝트별로 사업단 회의를 거쳐 정할 예정이다.

◆소아 임상은 성인의 3분의 1도 안 돼

소아암과 희귀질환의 경우 쓸 수 있는 약이 성인에 비해 턱없이 적다.

문 교수는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때문에 일반인들의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는데, 소아 임상은 전 세계적으로 성인에서 개발되는 약의 30% 이내”라며 “미국에서 특허 기간을 6개월∼1년 연장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며 소아 임상을 독려하지만 소아 치료제는 성인 치료제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업단의 장기 사업에는 환자들의 치료 내용뿐 아니라 가족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담는 데이터베이스(DB) 구축도 포함된다. 병원비 부담뿐 아니라 간병에 따른 부모의 실직과 돌봄 비용 등 간접적 손실과 가족의 현실적 고민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번 기부금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문진수 교수는 “항암 치료 후 서울대를 졸업해 의사가 된 경우 등 소아암 치료 완치 사례가 많다. 제 환자 중에는 크론병 아이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완치가 아니라도 장 마비에도 수액 맞고 학교를 잘 다니는 등 일상으로 돌아간 것도 의미가 크다”며 “아이들을 낫게 하는 것, 가장 가치있는 일 아니겠냐”며 의미를 부여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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