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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일하고 싶다’… 구의역 참사 5년,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입력 : 2021-05-25 06:00:00 수정 : 2021-05-25 2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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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구의역 참사 5주기

평택항 사망 청년 선호씨 친구들
김군 사고현장 찾아 “재발 안돼”

시민단체들 ‘추모주간 선포’ 회견
‘일하며 살고 싶다’ 쓴 조형물 설치
“중대재해법 실효성 있게 손질을”
‘죽지 않고 일하자’ 추모 메시지 5년 전 서울 광진구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모 군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24일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에 붙어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잠깐의 슬픔과 분노로 흘려 보냈던 수많은 산재 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사회를 끝내주세요.”

24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개찰구 앞. 김벼리(23)씨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친구 이선호(23)씨는 지난달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 숨졌다. 이날 김씨가 선 곳은 5년 전 ‘구의역 김군’이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다 숨진 곳이다. 김씨는 “또래였던 김군의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 아파했던 제가 5년 뒤 같은 이유로 친구를 잃고 이 자리에 와 있다”며 “김군도 제 친구 선호도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죽었다. 오늘도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간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공공운수노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김군의 5주기(28일)를 맞아 이날 구의역에서 ‘구의역 참사 5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 이상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이날부터 29일까지를 생명안전주간으로 선포하고 공동행동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 김군이 숨진 구의역 9-4 승강장에는 이날 이러한 문구의 추모 조형물이 설치됐다. 스크린도어에는 “죽어야 바뀌는 세상을 살아서 바꿔야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김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등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었고, 스크린도어 앞에는 하얀 국화꽃들이 놓였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추모에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박모(62)씨는 “왜 안타까운 뉴스가 끊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국가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선호씨의 고등학교 친구 배민형(23)씨도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이곳을 찾아 애도했다.

24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5주기를 나흘 앞둔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에서 공공운수노조 등 참가자들이 생명안전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뒤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사회단체들은 구의역 사고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제정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50인 이하 사업장 유예, 5인 이하 사업장 제외 등 소규모 사업장에 책임을 묻지 않고 처벌 조항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며 제대로 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현미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죽기 위해 일터를 나가는 노동자는 없다”며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이 매년 2000여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군과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며칠 전 평택항에서 세상을 뜬 이선호씨 등 반복되는 청년들의 죽음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용균씨의 동료 정세일씨는 “용균이가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현장에서 바뀐 것은 현장 조명 추가와 컨베이어 안전펜스 설치뿐”이라며 “안전·고용·처우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8년 12월 29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무대 영상을 바라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벼리씨 역시 “선호 일이 알려지고 수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찾아 앞다퉈 선호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20명이 넘는 사람이 산재로 사망했다”며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 죽는데 현장은 바뀌질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재 사고·사망을 막기 위해 대단한 기술력과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안전관리수칙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유지혜·구현모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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