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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스텔스 사고'…"보행자 과실 적극 평가해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21-05-23 23:00:00 수정 : 2021-05-25 14: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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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평균 300여건, 매해 30명 숨져
야외활동 많은 여름철 사고 급증

운전자 전방주시 소홀 책임 물어
최대 징역 5년 또는 2000만원 벌금
취객 보행자는 범칙금 3만원 그쳐
“보행자 과실 객관적 평가 필요”

‘덜컹.’

 

지난 3월14일 오후 8시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내리막길에서 운전하던 A(51)씨는 차량이 무언가를 밟고 지나온 듯한 충격을 느껴 급히 차를 세웠다. 내려서 보니 도로 위에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주변이 어두웠던 탓에 도로에 쓰러져 있던 그를 못 본 채 지난 것이었다. 남성은 인근 병원의 외상센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60대인 이 남성은 당시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운전자 A씨는 음주나 과속 운전을 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그가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다고 보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어두운 밤 술에 취한 보행자가 도로 위에 누워 있다가 변을 당하는 일명 ‘스텔스 보행자 사고’가 매년 200∼300건씩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고로 한 해 목숨을 잃는 인원도 적게는 20명대에서 많게는 40명대에 이르렀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251건이었고 관련 사망자는 27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에는 사고 345건·사망자 44명, 2018년 285건·40명, 2019년 374건·35명이었다. 서울 지역의 경우 올해 들어 현재까지 스텔스 보행자 사망사고가 총 4건 발생했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야외활동이 많은 여름철에 주로 발생한다. 오후 9시∼오전 4시 사이 어두운 도로에서 빈번하며, 지하주차장에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사고 유형은 대부분 차량 이동로에 누워 있던 취객이 변을 당하는 식이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뾰족한 예방책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로선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주의하는 것만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서울경찰청은 지난달부터 오는 10월까지 일선 경찰서에 사고 예방활동을 강화하라는 특별지침을 내린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도로 위 취객 관련 사고는 빈번하다”며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했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의 경우 다른 교통사고보다 보행자 과실이 높게 평가되는 편이다.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 분쟁심의위원회는 스텔스 보행자 사고에 대한 운전자와 보행자의 과실 비율을 6대 4로 제시했다. 도로 위에 누운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예견 및 회피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이유다.

 

법원 판례에서도 운전자 과실은 전방 주시나 전조등 작동 여부 등에 따라 갈렸다. 청주지법은 2019년 12월 충북 청주 오송역 인근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의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사고로 숨진 피해자는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차도에 누워 있었는데, 사고 현장의 가로등이 고장 나 운전자가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 사고 뒤 같은 장소를 지난 차량들도 감속하지 않은 상황 등을 고려해 “운전자의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전문가들은 스텔스 보행자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보행자 과실을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지만, 보행자가 도로 위에 눕는 등의 행위는 도로교통법상 범칙금 3만원에 그친다.

 

한문철 변호사는 “운전자 입장에서 좁거나 어두운 길에 누워 있는 보행자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보행자 과실이 분명한 경우 책임 소지를 높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스텔스 보행자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며 “국내법은 교통사고에서 운전자 과실을 높게 보는데, 스텔스 사고의 경우 피해자라도 과실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현모·권구성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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