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지난 5월 초 경상북도 영천(永川)을 찾았다.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한때는 경북 지역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다. 특히 한약재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유통되어, 한약방들이 발달했고 그 전통을 이어 현재 영천에는 한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영천은 청정한 지역적 여건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천의 보현산 천문과학관에는 천체망원경을 설치하여 별자리를 관측하고 있는데, 만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천체망원경이 바로 그것이다.
영천은 충절의 고장으로도 명성이 높다. 고려시대, 나아가 우리 역사 속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선생이 태어난 곳이 영천이다. 영천에는 정몽주를 배향한 임고서원(臨皐書院)이 있다. 임고서원은 1553년(명종 8)에 창건된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는데 1603년(선조 36)에 중건되었다. 인조 때는 장현광(張顯光)이, 정조 때는 황보인(皇甫仁)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 훼손된 것을, 현대에 와서 다시 복원하였다.
임고서원에 소장된 대표적인 문화재는 보물로 지정된 정몽주 영정이다. 조선후기인 1629년에 고려말의 문신, 학자인 정몽주를 그린 초상화로 비단에 채색되었고, 여말선초의 복제인 오사모와 청포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영천의 상징 누각인 조양각(朝陽閣)에는 정몽주가 이곳을 묘사한 시도 남아 있다.
임고서원 맞은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10명의 의사를 배향한 고천서원(古川書院)이 있다. 이곳에 배향된 의사들은 관군이 패전을 거듭하던 임진왜란 초기에 영천성을 사수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경주 전투에서 모두 순국하였다. 1940년 영천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조성하고 순국사(殉國祠)라는 현판을 달았다. 임고서원과 고천서원은 충절과 호국의 고장 영천을 상징하는 유적지이며, 6·25전쟁 시기 영천 지역은 낙동강 방어선 사수의 요충지가 되면서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이어 왔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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