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들, 1200여개의 댓글 달아… “죽을 용기로 사기꾼 잡고 돈 벌어 아들 용돈 주시라”
일주일 후 다시 글 올린 가장 “경찰에 신고해주시고 달려와 주신 분들 감사드린다. 살아보겠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모친 집까지 넘겼다는 40대 남자 가장의 사연이 누리꾼을 울렸다. 그는 극단적 선택까지 암시했는데, 누리꾼들이 직접 나서 경찰에 신고하는 등 불행한 사건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3일 자동차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대구에 살고 있는 44세 남자’라고 소개한 A씨는 “참 바보 같이 사기를 당했다. 통장에 5만원 남았다”면서 “아내는 이혼하자고 한다”고 현재 상황을 적었다.
A씨는 “제 전 재산, 대출, 어머님 역시 대출, 살고 계시는 작은 아파트도 넘어갔다”면서 “장인어른 돈, 외삼촌 돈… 저는 바보”라고 자책했다.

이어 “절대 사람 믿지 말라”고 당부한 그는 “일 년 전 이맘때가 생각 난다. 목숨 같은 내 아들, 걸음마 시작할 때였는데…. 잘 해주고 싶었고, 저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어린 아들을 언급했다.
그는 “차라리 비겁하게 도망치겠다. 이제 두 돌 지난 내 아들 못난 아빠 빨리 잊는 것이 나은 것 같다”고 극단선택을 암시했다.
A씨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살지마라 살아보려는 힘든 사람들 마음 이용하지 마라”고 원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12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A씨에게 “지금 당신은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니. 그 용기와 ‘깡’으로 살아볼 생각하시길 바란다”, “죽을 용기로 사기꾼 잡고 돈 벌어서 아들 용돈 주고 하셔야지. 생각 잘 하시라”, “무슨 사기를 당했는지 모르지만 사기 친 놈들은 호화로이 사는데 당한 분이 왜 죽는다고 그러시냐”, “미안하단 말만 하고 사랑한단 말만 하고도 망가지지 말고 다 갚고 더 사랑해주고 그때 가시라. 그거 다 갚으면 약 90살 정도 될 거다” 등 댓글로 위로했다.
A씨와 같은 대구 지역에 거주 중이라는 몇몇 누리꾼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댓글창에 남기며 “술 한 잔 기울이자. 연락하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일부 누리꾼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글이 화제가 되고 일주일 후인 20일 A씨는 후속 글을 올렸다.
그는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바보 같은 실수 걱정해주신 보배드림 가족 여러분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 며칠 전 생을 끊으려 했던 ○○아비”로 글을 시작했다.
그는 “경찰서에 신고해 주신 분들, 찾느라 고생하셨을 경찰관 분들 모두 다 너무 너무 감사하다”면서 “돌아가서 잠든 아들 얼굴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못난 아비가 더 못난 행동을 할 뻔 했다”고 적었다.
그는 “가려워 머리를 긁으면서도 ‘목욕하자’ 하면 ‘아빠랑 아빠랑’(이라고 외치는 아들과) 오늘 같이 목욕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제 얼굴에 물을 뿌리고는 넘어갈 듯 웃는 아들의 모습과 웃음소리를 들으며 제가 얼마나 못난 선택을 하려 한 건지 또 깨닫게 된다”고 했다.
이어 “며칠간 먹을 수도 없고 술 없이는 잠도 잘 수가 없었다”면서 “오늘 지인에게 부탁해 정신과를 방문해 보려 한다. 살아야겠다. 살아 보겠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특히 그는 ‘저번 생에 이번 생에 오라 해서 아들로 왔더니, 또 다음 생에 와달라 하고 이렇게 가면 다음 생에 아들이 오겠냐’라는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A씨는 “이번 생에 사랑하는 아들 최선 다해 키워보려 한다”면서 “다음 생에 사기 같은 거 당하지 않는 아빠가 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다시 한번 제 아들로 와주길 바라면서”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2년 전 뇌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다. 다행히 ‘쇼크’였다”면서 “못난 아들 때문에 집도 재산도 다 날린 우리 엄마. 살아서 그 이상 효도 해야겠다”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도 전했다.
그는 “감사하다. 죽을 각오로 살아보겠다”면서 “저에게 힘내라고 모여 주신 대구 분들. 저와 통화 후 용인에서 달려와 주신 분. 은혜 잊지 않겠다”며 글을 마쳤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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