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서 반군지도자 받아주자
불만 품은 모로코, 단속 안한듯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국경을 접한 스페인령 세우타로 이주민이 물밀듯이 몰려들면서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모로코와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인 약 8000명이 전날 이른 아침부터 36시간 동안 세우타로 넘어왔다. 이들은 유럽 입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는 듯 국경에 설치된 10m 높이 울타리를 넘었고, 맨몸으로 헤엄을 치거나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많은 이주민이 저체온증과 탈진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전날에는 한 젊은 남성이 바다를 건너다 숨졌다고 스페인 당국자는 밝혔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와 10대 청소년도 다수 섞여 있어 8000명 중 2000명가량은 미성년자로 파악된다.
모로코 북쪽 끝에 붙어 있는 세우타는 또 다른 스페인령 멜리야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과 국경을 맞댄 유이한 유럽연합(EU) 영토여서 가난과 전쟁을 피하려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몰려들곤 한다.
그러나 이번 대량 유입은 스페인 정부에 불만을 품은 모로코의 방관 속에 일어난 일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스페인은 앞서 서부 사하라 지역 독립을 추구하는 반군 지도자 브라힘 갈리가 코로나19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입국을 허용했는데, 모로코 측이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1975년 서사하라 지역을 병합한 모로코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이 지역 주권을 인정받았다.
당시 스페인은 전적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으나 모로코 외교부는 성명에서 “이웃나라 간 동반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며 보복조치를 암시했다. 한 이주자 인권단체 대표는 AP통신에 “평소 강력한 해안 단속을 실시하는 모로코가 외교부 성명 이후 경비 수준을 축소했다”고 말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페인은 국경 지역에 군대를 동원하고 경찰력을 추가 투입해 약 3600명을 모로코로 돌려보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도 프랑스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세우타로 향했다. 산체스 총리는 “갑작스러운 이주민 유입은 스페인과 유럽에 심각한 위기”라며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로코 외교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스페인과의 관계에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양측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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