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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채권자가 개인이 설립한 회사에 채무 이행 청구할 수 있을까 [알아야 보이는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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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4 09:42:36 수정 : 2021-05-14 09: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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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시에는 상호와 무관하게 사업주가 모든 책임을 부담하는 개인사업자, 이와 달리 사업에 관한 책임이 법인에 한정되는 형태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개인사업자에 비해 법인은 금융기관의 대출 등을 통한 자금의 조달이 용이하고, 주주인 사업주가 부담하는 사업상 위험이 제한되며,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율과 비용 처리 등을 통한 절세의 혜택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에도 예전에는 법인 설립 시 최소 자본금 및 최소 발기인 제한 규정 탓에 사업이나 자본의 규모가 상당하지 않은 이상 개인사업자로 창업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이러한 제한이 없는 덕분에(아직 최소 자본금 기준이 존재하는 업종도 있음) 처음부터 법인 형태로 창업하거나 개인사업자로 운영하던 사업을 법인 형태로 전환하는 사업주가 많아졌습니다. 

 

후자, 즉 개인사업자로 운영하던 사업을 법인 형태로 전환할 때 개인인 사업주가 채무는 그대로 두고 부동산과 설비 등 재산 일체를 새로 설립한 법인에 양도하면, 채무자인 개인은 자력이 없고 그의 재산을 양수한 법인은 채무자가 아니어서 그 재산의 집행이 불가능한 것이 원칙인 탓에 그 개인의 채권자는 실질적으로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없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개인의 채권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법리가 바로 법인격부인론의 역적용입니다. 법인격부인론이란 주주(개인)와 주식회사(법인)는 별개의 권리주체이므로 회사의 독립된 법인격이 부인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회사가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개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회사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고 있는 예외적인 때에는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그 배후에 있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이론으로, 우리 판례도 이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여 법인격부인론은 회사의 채무 등에 대하여 배후의 주주도 책임을 지게 하려는 것인데, 개인 또는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등 예외적인 사례에도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여 배후의 개인 또는 기존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 신설 회사에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본래 의미의 법인격부인론과 책임이 반대 방향으로 적용된다는 의미로 법인격부인론의 역적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대법원은 개인이 설립한 회사에 대하여 그 전에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 즉 법인격부인론을 역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 기준을 밝힌 바 있습니다.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던 A는 원고에게 채무를 부담하고 있던 중 영업 목적이나 물적 설비, 인적 구성원, 영업 소재지 등이 동일한 피고 회사를 설립하면서 대표이사로 취임하였고, A는 피고 회사에 개인사업체의 영업재산 일체를 양도하면서 주식 50%만 대가로 받았습니다.  피고 회사의 주주와 이사는 A, A의 형과 아버지였습니다. 한편 피고 회사는 A로부터 개인사업체의 장부상 채무를 모두 인수하였으나, 원고에 대한 채무는 인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원고가 피고 회사를 상대로 A가 부담하던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대법원은 “개인과 회사의 주주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등 개인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회사 설립과 관련된 개인의 자산변동 내역, 특히 개인의 자산이 설립된 회사에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개인의 자산이 회사에 유용되었는지 여부와 그 정도 및 제3자에 대한 회사의 채무 부담 여부와 그 부담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회사에 대하여 설립 전에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2021. 4. 5. 선고 2019다293449 판결).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 기준을 적용하여 A는 이 사건 채무를 면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사업체와 영업 목적이나 물적 설비, 인적 구성원 등이 동일한 피고를 설립한 것이고, A가 피고의 주식 50%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A를 제외한 피고의 주주도 A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등 A가 피고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었으며, 피고 설립 당시 A의 소유였던 개인사업체의 모든 자산(약 15억원의 부동산 포함)이 피고에게 이전된 반면 A는 자본금 3억원으로 설립된 피고 주식 중 50%를 취득한 외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받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주식회사 피고가 그 주주인 A와 독립된 인격체라는 이유로 원고가 A의 채무 부담행위에 대하여 피고의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원고는 A뿐만 아니라 피고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회사의 법인격은 주주 등 개인의 인격과는 독립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실제로 법인격부인론은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여 그 인정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법률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법인격을 남용하여 법인의 배후에 숨는 개인이나 기존 회사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기 바랍니다.

 

정현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hyunjee.chung@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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