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폭이 기업실적 좌우할 수도” 우려
전경련, 亞 18國 최근 5년간 최저임금 분석
“한국 연평균 9.2% 올라 인상폭 가장 높아”
민노총 “최저임금 대폭 인상 선택 아닌 필수
2020년 마이너스 성장한 英·佛 등도 올려”

“2021년의 최대 리스크는 코로나19 백신과 인건비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임원은 올해 경영 전망과 관련한 가장 큰 걱정거리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을, 대내적으로는 과도한 임금 인상 가능성을 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에 접어들고 미·중 경제 패권 다툼으로 한국 산업계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확산하는 가운데 백신 수급 부족에 따른 사회 불안과 문재인정부 마지막 최저임금 인상 폭이 기업 실적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현 정부 마지막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최근 2년 사이처럼 과도한 인상을 우려하는 재계와 대통령 공약대로 1만원대에 근접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입장차가 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급격한 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코로나19 이후 심화한 사회 양극화를 최저임금 인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이다.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통계를 바탕으로 2016∼2020년 아시아 18개국의 최저임금 변화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연평균 최저임금 상승률이 9.2%로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제조 분야 경쟁국인 일본, 대만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중국, 베트남보다도 3∼6%포인트 높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회원사인 국내 주요 대기업에 올해 임금 인상 폭을 최소화해달라고 권고했다. 경총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기업 연간 평균 임금은 190.8%로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다면서 이같이 주문했다.

노동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심화한 양극화를 최저임금 인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민노총은 재계의 최저임금 인상 억제 주장이 세계적 추세와도 다르다는 입장이다. 민노총은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가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에도 최저임금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막대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면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 중소기업과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특수를 누린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법인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적은 비대면 사회 가속화에 따른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백신 수급 불안 등에 따른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졌기 때문에 과한 ‘실적 잔치’보다는 미래에 대비한 투자가 먼저”라고 반박했다.
급격한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이 단기적으론 기업 성장성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10일 1분기 실적을 공시한 엔씨소프트의 경우 전년 동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0%와 77%씩 줄었다. 연봉 대폭 인상 등에 따른 인건비 증가로 인한 영업비용 상승이 악재였다는 분석이다. 네이버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 전 분기 대비 10.8% 줄었다. 임직원에게 부여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관련 비용 등이 늘어서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9명 가운데 한 명을 교체했다고 이날 밝혔다. 공익위원은 노사 대립 구도인 최저임금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노동계는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각각 2.9%, 1.5%로 떨어뜨린 공익위원들을 대거 교체할 것을 요구해왔다. 민주노총은 이날 “공익위원들이 유임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논평했다.
나기천·남혜정·권구성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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