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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연수 자리 없어 ‘미아’된 예비 변호사들 [심층기획 - 변시 합격자 연수 제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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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6 14:00:00 수정 : 2021-05-16 1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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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 합격자수 법무부·변협 갈등속
변협, 연수정원 789명→200명 제한
연수 마쳐야 정식 변호사로 취업
“치킨게임에 애꿎은 합격자들 피해”

2021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1706명
한해 500명 가량 연수 기회 사라질 판
변협 “합격자 수 많아져 감당 못해
국고 보조금도 줄어 비용 부담 커”
법무부 “연수 취지 어긋나” 재논의
로스쿨 교육 개편 등 대책 마련해야

“합격자 정원을 둘러싼 법무부와 변호사 업계의 다툼, 부실한 로스쿨 교육의 문제가 10기 합격자 연수과정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연수 기회 제한은 열악한 청년 변호사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결정입니다.”

 

3년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30대 후반의 A씨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실무연수 추가 합격으로 간신히 연수 기회를 얻었다며 안도의 한숨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했다. 일반 직장인이었던 A씨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다 지방의 한 로스쿨을 졸업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라 쉽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변호사시험을 한번에 합격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대한변협이 변호사 실무연수 대상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하면서 연수 기회를 잃을 뻔했다. 일정 기간 연수를 마치지 못하면 정식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다.

 

변시에 합격해도 6개월 이상 로펌 등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일하거나 대한변협이 주관하는 의무연수를 마쳐야 정식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A씨는 1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나이도 많은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연수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30건 정도 이력서를 제출하면 면접 기회는 3∼5회 정도 얻는 것이 고작”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대형 로펌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변협 연수를 못 받는 합격자 중에서는 서초·교대역 사이의 소규모 법률사무소 등에서 월 150만∼200만원의 수습기간을 감내하면서라도 실무연수를 채우려 원서 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법시험 낭인’을 막고 국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로스쿨과 변시 제도가 도입된 후 수면 아래 있던 이른바 ‘미아 합격자’ 문제가 변시 10회째를 맞아 터져나왔다. 2011년 제1회 변시에서 1451명의 합격자가 나온 이후 해마다 합격자 적정 규모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법무부와 변호사업계, 로스쿨의 갈등에 예비 청년 변호사들이 유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변시 합격자 상당수의 실무연수를 맡고 있는 대한변협이 교육의 질 개선과 정부의 예산 삭감 등을 이유로 연수 정원을 대폭 줄이면서 연수처를 제때 찾지 못한 미아 합격자 문제가 본격화했다. 이런 변시 합격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제대로 교육은 안 시킨 채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블랙펌’(블랙과 로펌의 합성어·악덕 법률사무소)도 적지 않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연수생을 볼모 삼은 변호사 합격자 규모 자체의 논란도 문제이지만 로스쿨 교육과 합격자 대상 연수의 내실화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변호사가 부실하게 양성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법률서비스 이용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연수 정원 200명 제한”이 촉발한 ‘미아 합격자’… 법무부, “연수 인원 재논의”

 

변시 합격자의 연수 공백 우려는 대한변협이 지난달 제10회 변시 합격자 연수 신청 안내를 공지하며 “합격자 연수의 내실화를 위해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정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공지하면서 비롯됐다. 10회째인 올해 변시 합격자는 1706명이다. 변시 합격자의 실무연수를 담당해온 대한변협은 그동안 △강의교육 3개월 △모의기록을 검토하는 1개월의 소규모 분반토의 △법률사무를 체험할 수 있는 2개월간의 현장연수 과정으로 이뤄진 6개월 교육을 진행했다. 중복 지원과 중도 이탈을 고려하더라도 한 해 500명 가까운 연수생을 받았던 대한변협의 연수 기회가 사라지자 합격자들은 “사다리 끊기”라고 반발했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789명의 신청을 받아 실무연수를 진행했다.

 

변시 합격자에게 변협 실무연수는 ‘검·클·빅(검사·로클럭·대형 로펌)’을 제외하고 안정적으로 연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변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법원의 재판연구원(로클럭) 300명과 검사 70명 정도, 대형 로펌 200∼300명, 기타 법률사무종사기관 채용을 제외하면 대한변협 연수는 합격자들이 실무를 익히면서 동시에 법률사무소 수습지원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다.

 

대한변협은 연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연수생 규모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연수하려면 5년차 이상 변호사 1명이 연수생 1명의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에는 합격자가 너무 늘어 2년차 변호사에게 여러 명이 연수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제대로 된 연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축소 배경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법무부가 지원해온 실무연수 국고 보조금이 지난해부터 삭감되면서 발생한 비용 부담도 연수생 인원을 줄인 배경이라고 꼽았다.

 

법무부는 “연수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대한변협 연수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연수인원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이에 지난 3일 “변시 합격자 실무수습(실무연수)제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와 교육부, 변협, 로스쿨협의회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시 합격자 수를 놓고 줄여야 한다는 대한변협과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양쪽을 조율하는 법무부 사이의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가운데 애꿎은 합격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연수 학점제’부터 사법연수원 제도 부활까지 각양각색

 

적정 규모의 실무연수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미아 합격자 문제는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변시 합격자 C씨는 “(변협 연수조차 받지 못하면) 연수기간에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합격자의 처지를 악용해 임금을 착취하는 ‘블랙펌’이라도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는 예비 변호사의 실무능력 함양에 초점을 맞춘 로스쿨 교육과 변시 제도 개편을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변호사 양성·연수 과정의 내실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주체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건국대 한상희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대한변협을 중심으로 한 연수 체제에 방점을 찍었다. 한 교수는 “변호사 양성 과정은 기본적으로 대한변협과 로펌, 로스쿨이 분담하지만 대한변협이 변시 합격자를 연수하는 법률사무기관에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균관대 한애라 교수(〃)는 ‘실무 연수 학점제’ 도입을 주장하며 “변호사로서 꼭 알아야 할 실무 내용은 모든 변시 합격자가 온라인으로 수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는 “3년의 로스쿨 과정으로는 변시를 칠 능력 양성조차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2학년 2학기 때 개설되는 각종 실무교육 수업은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에게 권하지 변시 준비에도 급급한 학생들에게는 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사법연수원에서 6개월이든 1년이든 나눠서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독일 1∼2년 연수 이수 의무화… 미국은 실무 중심 로스쿨 교육 강점

 

변호사시험 합격자 연수제도를 놓고 학계와 법조계 모두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로스쿨 교육과 변호사시험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회의론부터 사법연수원을 부활시키자는 제안까지 나오지만 현실적인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뒤 변호사 수 급증을 둘러싼 논란과 부작용이 변시 연수제도를 통해 터져나오면서 예비 법조인과 법률서비스 소비자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주요 선진국의 법조인 양성 제도는 어떨까.

 

오랜 기간 고유한 법제도를 발전시켜온 선진 각국은 다양한 법조인 양성 과정을 두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1∼2년의 연수 프로그램 이수를 강제한다. 반면 변시를 자격시험화한 미국은 별도 실무연수 제도가 없다. 대신 실무에 집중한 로스쿨 커리큘럼과 대형 로펌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변호사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은 법대 졸업 후 1차 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2년의 수습기간을 마쳐야 한다. 민사법원·검찰청·행정관청과 변호사 사무소 등 필수 수습기관에서 최소 3개월 이상 연수를 받아야 하며, 변호사 사무소는 9개월 이상 이수해야 연수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별도의 연수기관은 없으며 도제식으로 선배 변호사로부터 업무 지도를 받는다. 연수 후 다시 2차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정식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은 로스쿨 졸업 후 신사법시험에 합격하면 1년 동안 사법연수소에서 일괄적으로 실무교육을 한다.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고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법시험 예비시험 과정도 별도로 있다. 이들 역시 사법연수소에서 로스쿨 출신과 함께 법조인의 기초를 닦는다. 사법연수생은 민사재판·형사재판·검찰수습·변호사수습을 각 2개월씩 마쳐야 한다. 이후 실무기관에서 2개월간 본인이 선택한 분야의 종합형 실무수습을 받고, 사법연수소의 집합수습 2개월을 거쳐 연수를 마친다.

 

미국은 영미법 특성상 로스쿨을 통해 최소한의 법적 소양을 갖춘 변호사만 배출한다. 이후 법조인 스스로 실무를 통해 세부 내용을 학습하며 성장하는 구조로 법률가를 양성한다. 로스쿨이 학문 교육보다는 법률 시장을 위한 ‘직업학교’ 성격이 강한 만큼 법에서 한국과 일본, 독일처럼 실무연수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뉴저지 등 17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변호사 등록을 하려면 변호사 윤리나 법률 기술에 대한 특별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대형 로펌의 경우 로스쿨과 연계한 실습·학점 과정 등을 통해 도제식으로 예비 법조인을 교육한다.

 

◆의무 수습기간 ‘족쇄’… 야근에 상담 뺑뺑이까지 강요

 

“변호사님 멍청해요?”

 

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인 김지훈(가명)씨는 2019년 실무연수 때 들은 막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갓 로스쿨을 졸업한 김씨에게 선배 변호사들은 방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서면 작성을 떠넘겼다. 혼자 일일이 작성법을 찾아가며 이틀 만에 서면을 완성했지만 돌아온 건 조언이 아닌 무시와 경멸이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글을 못 썼어요?” “이렇게 일처리가 늦어서 일하겠어요?” “써놓은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김씨는 “인격모독이 심했다”며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한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시험에 합격한 이정우(가명)씨도 연수 과정에서 오싹한 경험을 했다. ‘생초보’인 이씨가 쓴 서면을 대표 변호사가 확인도 하지 않고 제출한 것이다. 선배의 지시로 이씨가 작성한 고소장은 윗선의 검토 없이 그대로 경찰에 접수됐다.

 

고소장을 받아든 경찰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의뢰인에게 “고소장이 왜 이 모양이냐”고 전화해 타박했다. 이를 전해 들은 대표 변호사는 오히려 이씨를 혼냈다. 이씨와 함께 실무연수를 했던 A씨는 “본인이 보지도 않고 제출했으면서 혼내는 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며 “저희(수습 변호사)도 저희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의뢰인은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이 변호사로 일하려면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 대한변호사협회 등 지정된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최소 6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수습기간 없이는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로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수습처를 구하는 기간만큼은 철저히 ‘을’로 지내야 하는 셈이다.

 

지난해까진 로펌 등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대한변호사협회가 남은 합격자들을 모두 수용해줬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변협이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대폭 감축하면서, 올해 대한변협 연수를 신청했다 떨어진 300여명은 꼼짝없이 자력으로 수습처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문제는 이들이 주로 가게 될 곳에 ‘블랙펌’(악덕 로펌·법률사무소)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블랙펌은 수습 변호사들의 간절함을 악용해 이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착취하는 일종의 ‘악덕업주’다. 그간 블랙펌 문제는 변호사업계에서만 언급될 뿐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 보니 사각지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야근·주말 출근은 기본, 상담 뺑뺑이까지… 블랙펌의 현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200명 제한을 둔 실무연수를 지난 7일 시작했다. 이번 실무연수엔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545명의 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지원했는데, 이 중 345명은 추첨에서 떨어졌다. 345명에겐 한 가지 선택지만 남았다. ‘어떻게든 수습처를 찾을 것’. 6개월 수습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정상적인 변호사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한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받아줄 수습처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블랙펌도 감수하고 들어가게 된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올해는 더 많은 변시 합격자가 실무연수 길이 막혀 블랙펌으로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랙펌의 정의가 명확히 있는 건 아니다. 청년 변호사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곳은 모두 블랙펌으로 분류된다. 주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으로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시키는 곳, 의뢰인 상담·서면 작성을 전담시키는 곳,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는 곳 등이 꼽힌다.

 

수습 변호사에게 야근과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블랙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습 변호사가 30건가량의 사건을 맡으며 서면을 떠맡아 쓰는 식이다. 주로 이혼소송이나 재개발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이혼사건의 경우 수습 변호사가 80건까지 사건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박은선 변호사는 “어떤 수습 변호사는 본인이 30건을 담당하는데 너무 무섭다고 했다”며 “본인이 서면을 다 작성하고, 이게 그대로 법정에 나가는데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을 지냐며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블랙펌에서 수습 생활을 했던 한 변호사도 “야간에 상담을 많이 시킨 기억이 난다”며 “‘이곳은 나를 소모품으로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수습 변호사에게 소위 ‘상담 뺑뺑이’를 시키는 곳도 블랙펌이다. ‘상담 뺑뺑이’란 의뢰인 상담을 수습 변호사가 전담하는 것을 뜻한다. 상담 때는 의뢰인 질문에 즉각 대답해야 해 수습 변호사가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귀찮고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특히 블로그 등 인터넷 광고로 성장한 로펌들에서 상대적으로 많다. 저가에 사건을 수임하다 보니 상담 손님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의뢰인들은 실력과 경험이 있는 ‘정식 변호사’와 상담하길 원하는데, 변호사들은 재판 참석 등 여러 사정으로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잦다. 결국 저녁과 주말 등 가리지 않고 상담할 수 있는 건 수습 변호사뿐이고, 수습 변호사는 ‘배운다’는 느낌 없이 기계적으로 상담업무를 도맡게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블랙펌이 존재한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식비를 터무니없이 낮게 잡는 경우, 급여를 연체하는 경우, 4대 보험을 안 내주는 경우 등 돈 문제를 일으키는 블랙펌도 많다. 한 변호사는 “지인인 변호사가 점심 때 1만5000원짜리 음식을 시켜먹었는데, 나중에 그걸 알게 된 대표가 엄청 뭐라 했다고 한다”며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블랙펌이 늘면서 수습 변호사들도 블랙펌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피하려 애쓴 지 오래다. 변호사들만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내엔 알림게시판이 있는데, 여기서 비추천을 많이 받는 곳은 대부분 블랙펌이다. 매년 1월에 변호사 모집 공고를 올리고, 몇 달 간격으로 계속 수습 공고를 올리는 곳도 블랙펌으로 분류된다.

 

◆공급 초과하는 수요… 블랙펌이 생기는 이유

 

블랙펌이 생기는 근본적 원인은 수습기간을 채우고자 하는 수습 변호사들이 실무교육을 하고자 하는 법률사무종사기관보다 많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수요가 많은 쪽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은선 변호사는 “어쨌든 변호사업계에서 일할 것이기 때문에 블랙펌이라고 해도 견디는 것”이라며 “이 기간만 견디면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마음, 다른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참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공급자 입장에서 수습 변호사를 제대로 가르칠 유인이 없는 것도 문제다. 로펌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긴 하지만 월급을 주면서 변호사를 가르쳐야 하다 보니 아직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수습 변호사에게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중·소형 로펌의 경우 잘 가르쳐놓은 수습 변호사가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펌에서 가르치고 나면 변호사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가니까 실무수습부터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것”이라며 “대형 로펌들은 ‘일 잘한다’고 소문나면 다 데려간다”고 했다. 정 교수는 “그냥 빼가는 게 아니라 회사의 노하우를 다 가지고 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습 변호사도 법정 설 수 있도록 해야”

 

블랙펌이 줄어들고, 내실 있는 실무수습이 진행되기 위해선 수습 변호사에게 둔 여러 제한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수습 변호사들은 법정에 설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런 제한이 노동착취 등을 하는 블랙펌을 계속 양산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정에 세울 수 없으니 사무실에 앉아 서면 작성이나 의뢰인 상담 등 단순 업무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걸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6개월 실무수습 기간엔 법정에 변호사로 단독으로 서지 못한다”며 “국선변호인에 한해서는 허용해줘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선 변론으로 20개 정도의 사건을 6개월 동안 맡아보면 구치소도 가보고 변론도 하는 등 실무 경험을 쌓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며 “이처럼 실제 송무 경험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 등이) 여러 묘수를 생각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주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 역시 “법정에 기존 변호사랑 같이 설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습 변호사들이 실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훈·이희진·이지안·이정한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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