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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부터 목가구까지… ‘명품’ 즐비한 기증품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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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9 06:00:00 수정 : 2021-04-28 2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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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무려 2만1600여 점이다. 28일 삼성이 발표한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역대 최대 규모의 기증’임을 확인하는 숫자다. 이 중 국보(14점), 보물(46점)이 60점이라는 사실은 질적으로 역대 최고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왕제색도’(국보), 불교 경전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선사시대 유물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조선후기 작품인 ‘백자 청화동정추월문 항아리’(보물), ‘김홍도 필 추성부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정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비지정문화재는 목가구, 불교 유물, 민속품, 고고유물 등 우리 역사의 전 시대, 전 분야를 망라한다.  

 

기증품을 받게 된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품의 양과 질을 한층 보강했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웠던 삼성컬렉션이 국가기관으로 이전됨에 따라 해당 문화재의 활용과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대로 된 고려불화 없다는 불명예 벗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에 띄는 기증품은 정선의 말년작인 인왕제색도다. 가로 138.2㎝, 세로 79.2㎝ 크기의 대작으로 정선의 400여 점의 유작 가운데 가장 크며 ‘금강전도’(국보)와 함께 조선후기에 꽃피운 진경문화를 상징하는 걸작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하나인 금강전도도 기증되지 않겠냐는 예측이 있었으나 빠졌다. 동국대 최응천 교수는 “국립박물관에 화첩 등의 소품은 있었으나 인왕제색도 같은 정선의 대작은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소품들과 함께 전시하면 ‘겸재 정선의 방’ 같은 독립된 전시실을 꾸밀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이번 기증으로 중박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분야의 소장품을 확충했다는 점에서 보면 고려불화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수월관음도’(비지정문화재)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고려불화는 예술성, 희귀성면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문화재지만 중박에는 2016년 기증받은 1점 뿐이다. 이마저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 아쉬움이 컸다. 다른 작품을 구입할려고 해도 40억원 정도에 불과한 유물구입 예산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최교수는 “기증된 천수관음보살도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좋아 이 한 점 만으로도 중박에 큰 가치를 가진다”며 “기증된 수월관음도가 지금은 비지정이지만 상태가 좋다면 지정문화재로 올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문가는 “제대로 된 고려불화가 없다는 ‘수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중박에는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 후기 청동기시대 제사장들이 주술적 의미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이나 “조선전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서지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인 ‘월인석보’(보물), 말년의 김홍도가 좋지 않은 건강, 어린 자식에 대한 걱정 등 인생의 허무함을 담아 그려 더욱 애절한 추성부도 등도 국민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기증품 2만1600여 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지정문화재는 국내외의 전시를 통한 활용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량이 워낙 많아 상태, 가치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지정이 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뛰어난 유물이 많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중박은 분청사기, 목가구에 일단 주목하고 있다. 중박 윤성용 학예연구실장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분청사기 중에 뛰어난 것들이 많다”며 “도자기는 국내외 전시에서 수요가 많았지만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기증으로 활용폭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층장 목가구

꽤 많은 수가 포함된 목가구도 눈길을 끈다. “과도한 장식을 피해 검소하고, 정적인 전통적 미의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간결한 구성과 쾌적한 비례가 매우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는 목가구의 정수라 할 만한 작품들이다. 호암미술관은 2000년에 소장 중인 목가구를 소개하는 테마전을 개최해 자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 새롭게 조망할 것”

 

민간에서 국립기관으로의 문화재를 기증하면 대개 보존·보관의 안정성 확보, 활용의 확대, 연구의 활성화 등에 큰 기대가 쏠리기 마련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의미가 떨어질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을 소장, 관리한 리움미술관이 웬만한 국립기관 못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리움미술관이 특히 고미술 분야에서 활력을 크게 잃었다는 점에서 이번 기증은 활용과 연구의 활성화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리움미술관의 문화재 전시회는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양질의 인력도 풍부해 자체적인 발굴조사, 연구논문집 발행 등도 활발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인력이 줄면서 일상적인 전시 정도만 소화하는 정도가 됐다. 문화재 관련 전시로 눈에 띄는 특별전은 2015년 ‘세밀가귀전’이 마지막이었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 기증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전시, 연구가 재차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박은 6월에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 10월에 기증품 중 대표 명품을 선별 공개하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할 예정이다.

 

리움의 전시회가 소수의 명품 위주로 개최되는 경향이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한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기증품 중에는 한번도 전시장에서 소개된 적이 없는 유물들도 많았을 것”이라며 “중박으로 가면 다양한 전시회에서 활용되고, 유물에 대한 해석도 폭넓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움미술관에 있을 때보다 연구자들이 접근하기가 쉬워 학술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서원대 이광표 교수는 “최근에는 리움미술관이 대중과의 소통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 강했던 게 사실”이라며 “국립박물관이 민간기관에 비해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활발해 질 것이라는 기대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박 민병찬 관장은 “기증품의 이미지를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한 주요 작품을 국외 박물관과 미술관에 알릴 계획”이라며 “‘이건희 기증품’의 역사적·예술적·미술사적 가치를 조망하기 위한 관련 학술대회 등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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