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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사망 절반이 1세 미만… 돌아가면 재학대 ‘악순환’ [심층기획 - 아동학대 ‘땜질 처방’ 안 된다]

입력 : 2021-04-25 23:00:00 수정 : 2021-04-26 09: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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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2019년 하루 평균 82명 학대받아
5년 내 재학대 아동 사례도 2776명
가정 돌아간 8명 중 1명 꼴 위험 노출

시·군·구에 전담공무원 664명 배치
24시간 주7일 근무 고려하면 태부족
직무교육 등 전문성 강화도 변죽만

연 2회 이상 의심 신고 땐 즉각분리
현실 모르는 탁상행정 비판 목소리
사건 처리 때 아동인권도 철저 무시

2019년 한 해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는 3만45건이다. 하루 평균 82명의 아이들이 학대를 받았고, 42명이 이 때문에 사망했다. 학대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아이 4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9명은 1세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5년 내 재학대받은 아동은 2776명이고, 가정으로 돌아간 학대피해 아동 8명 중 1명은 다시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동학대와 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매년 반복되는 가운데 정부는 ‘양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지난 1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법무부, 경찰청 등 범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한 제1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도출한 결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깊이 있는 분석이나 진상조사 없이 개별사건의 단편적인 해결책들만 열거한 이 방안만으로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2의 ○○○’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동학대 사망자 절반은 1세 미만, 전문성 갖춘 조사 담당 공무원 부족이 화 키워

25일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살펴보면 사건 초기 조사를 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지난해 118개 시·군·구에 290명을 배치한 데 이어 올해 229개 시·군·구 및 5개 시·도에 374명을 추가 배정한다. 오는 10월 말까지 모든 시·군·구에 664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직무교육 시간을 기존보다 2배 많은 160시간으로 늘리고, 학대예방경찰관(APO)을 대상으로 심리학·사회복지학 등 관련 학위 취득 지원 등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복지부 계획에 따라 664명이 배치되더라도 지자체별 2.89명으로,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원활한 아동학대 대응 업무를 위해서는 내근직 1명, 폭행 위협 등을 고려한 외근직 2명 등 최소 3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24시간 주 7일 근무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최소 인원이다. 실제 현장이 원만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민간에 맡겨뒀던 조사업무라도 가져와 공공화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복지부가 발표한 인력 계획도 방대한 업무량에 비해 양과 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기존 인원에서 부서이동만 하는 것인지, 추가적으로 충원하는 것인지 인적 자원의 실체가 없는 등 중장기계획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전문성 강화’도 그 방법과 세부내용이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성’은 아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동 인권 보호를 핵심 가치로 둔 교육·훈련을 통해서 형성돼야 한다. 이러한 교육·훈련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 예산이 전제돼야 한다. 단순히 전담공무원에 대한 직무교육과 보수교육 시간을 늘리고 순환보직을 금지하는 정도의 대책으로 전문성 강화를 외치는 것은 현장의 부담만을 가중시킨 것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동학대 사건을 지원해온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의 ‘아동학대대책 간담회’에서 “전문성은 한자리에서 오래, 많은 사건을 접해야 생기는 것이며, 교육시간을 늘린다고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며 “학위지원, 전문직위 지정, 전문경력관 제도가 실현가능한 상황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쉼터 등 대안 부족한 상황에서 무조건 즉각 분리는 현장 외면한 것”

지난달 30일부터 시행된 ‘즉각분리제도’는 아동학대를 몰이해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즉각분리제도는 연간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학대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해 아동일시보호시설 등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쉼터’ 등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즉시분리를 추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라고 조언한다. 김 변호사는 “학대피해가 확인되고, 재학대 위험이 있을 때 72시간 내에 분리하도록 하는 ‘응급조치’ 제도로 충분한 상황에서, 사법적 판단 없이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판단하에 임의로 분리하도록 한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위헌의 소지까지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학대라는 판단부터 위기 아동 분리 이후까지, 현장은 ‘불확실성투성이’다. 모든 단계마다 판단이 잘못될 위험이 따른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늘 책임 추궁과 경질, 비난, 처벌이 반복됐다.

 

이미 현장에선 기피부서가 됐다. A지자체에서 아동학대전담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은 “인원이 지난해보다 3명 더 늘었지만, 신고건수는 그보다 더 늘어 업무는 여전히 과중하다”며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아이의 삶 등이 달라지고, 비난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잘 맡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배치된 전담공무원이 짧은 기간 내 자리를 옮기거나 휴직계를 내고 빠져나가는 사례도 있다. 현장에선 “일은 어려운데 전문성 키울 새도 없이 법과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일 터지면 책임지라는데 누가 버티겠느냐”는 자조가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 방안에 ‘아동’이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사건 조사부터 분리, 사례관리까지 아동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다”며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 과정에 놓인 아동의 욕구와 심리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각 과정에서 선택하는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부여해줄 것인지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보호시설 68곳뿐… 수용 역부족

 

“아동 학대 사건은 피해 아이를 가해자로부터 제때 떼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아동학대 재발 방지책의 핵심은 ‘아동학대 즉각 분리 제도’이다. 일 년 동안 2회 이상 학대 신고를 받은 아동을 양육자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시스템이다. 보호자가 아동의 답변을 방해한 경우 또는 아동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여전히 허점이 많다. 피해 아동을 보듬어야 할 보호시설은 물론 관련 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3만923건에서 2018년 3만3532건, 2019년 3만8380건, 2020년 3만8100여건이다. 이 중 아동 재학대는 2016년 1591건, 2017년 2160건, 2018년 2543건, 2019년 2776건으로 매년 오름세다.

 

이 중 원가정 보호 조치는 높은 비율의 재학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학대 아동을 보호할 만한 시설은 태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모두 68개소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경기 14개소, 서울 9개소, 부산·경북·전남 4개소, 대구·인천·경남 3개소 등이다.

 

시설 상담원은 모두 960명이다. 기관별로 편차는 있지만 상담원 1인당 60개 가정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근속기간은 2년 안팎으로 이직률 역시 높았다. 다시 말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에 비해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상담원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사후관리까지 포함하면 상담원의 업무량은 곱절로 는다.

 

울산=이보람 기자, 배소영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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